[날씨 이야기]봄꽃은 기상 예보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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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태양의 신을 사랑한 소년이 있었다. 태양이 떠올라 환한 빛을 비추면 춤을 추고 즐거워하다 밤이 되면 슬퍼했다. 태양의 신도 소년을 좋아하기 시작할 무렵, 둘 사이를 지켜보던 구름의 신이 질투에 빠져 버렸다. 구름의 신은 태양의 신을 여드레 동안 구름 속에 가두어 소년이 태양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태양을 보지 못하자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소년은 죽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태양의 신은 죽은 소년을 금잔화로 환생시켰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금잔화는 신화처럼 빛에 반응한다. 햇빛이 나지 않으면 정확하게 꽃잎을 오므린다. 그러다 보니 서양에서는 “금잔화가 아침에 개화하고 오후까지 닫히지 않는다면 맑은 날씨를 기대해도 좋다”라는 속담이 전해온다. 관찰해 보면 금잔화가 꽃잎을 오므리면 비가 올 확률이 높아진다.

습도 변화로 날씨를 알려주는 꽃도 있다. 주인공은 데이지다. 데이지의 속명은 라틴어로 ‘bellus(아름다운)’이지만 영어로는 ‘day’s eye(태양의 눈)’로 불린다. 꽃의 중앙부가 태양의 눈처럼 생겨서인지 데이지는 햇빛을 무척 좋아한다. 그러나 빛보다는 대기 중의 습도에 무척 민감하게 반응한다. 날씨가 흐려지면서 공기 중의 습도가 높아지면 꽃받침의 조직이 변하면서 자동적으로 꽃잎을 오므려 눈을 닫아 버린다. 이런 특성 때문인지 ‘데이지가 눈을 닫으면 비’라는 속담이 전해져 온다. 데이지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의외로 많은 남자들이 좋아하는 꽃이라고 한다. 아마도 겸손함을 사랑하는 수풀의 요정 벨리데스(Belides)가 변신한 꽃이기 때문이리라.

봄이 되면 우리네 땅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민들레다. 민들레는 비가 오기 전에 꽃들을 오므려 닫아 버린다. 공기 중 습도가 높아지면 꽃받침의 조직이 다소 부풀어 오르면서 꽃 덮개의 모양을 변화시킨다. 식물학자들은 민들레꽃이 공기 중의 상대습도를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민들레꽃은 씨에 부착된 부드러운 섬유에 의해 바람에 날린다. 부드러운 섬유는 젖어서는 날아가지 못하기에 본능적으로 꽃을 닫는다. ‘민들레꽃이 닫히면 비’라는 속담도 야외에서 날씨 예보관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할미꽃은 꽃잎 안쪽을 제외한 모든 곳에 흰색 털이 나 있어서 할미란 이름을 얻었다. 허리가 꼬부라진 모양도 할머니를 꼭 닮았다. 할머니의 날씨 지혜까지 닮아서일까? 할미꽃도 날씨를 미리 알려준다. ‘할미꽃이 고개를 쳐들면 큰 가뭄’이라는 속담이 있다. 할미꽃은 한 꽃대에 한 송이씩 피는데 하늘을 보지 않고 땅을 향해 검은 자주색의 꽃을 피운다. 그런데 땅을 향해 피어야 할 꽃이 고개를 든다는 것은 기후에 이상이 있다는 뜻이다. 대개 겨울과 초봄에 가물면 그해는 가뭄이 드는 경우가 많다. 할미꽃이 고개를 드는 것은 가뭄으로 인해 꽃에 생태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는 할미꽃이 고개를 들지 않고 풍년이 들었으면 좋겠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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