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 격전(激戰)이다. 검찰과 경찰이 사활을 건 듯 부딪치고 있다. 전선은 세 갈래다. ‘장자연 리스트’ 사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연루된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 그리고 클럽 ‘버닝썬’ 사건이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수면 아래서 불꽃 튀는 폭로전이 벌어지고 있다.
“경찰이 중요한 증거를 누락하고 은폐했다.”(검찰)
“검찰이 피해자를 압박해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렸다.”(경찰)
김 전 차관 사건이 부실 수사 의혹을 받게 된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는 비난의 일부다. 다른 두 사건에서도 비슷하다. 조직의 명예, 법적 책임 문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검경 수사권 조정 때문이다. 검찰은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권을 유지하려는, 경찰은 수사 종결권 등을 확보해 검찰의 통제를 최대한 많이 걷어내려는 목적이다. ‘나는 괜찮은데 네가 문제니까 권한은 내가 갖는 게 맞다’는 주장의 근거를 대려는 것이다. 고지에 먼저 올라 깃발을 꽂으려는 전략이 아니다. 내가 못 올라가도 상대를 상처 내고, 굴러 떨어뜨리려는 작전이다.
그 연원은 깊은 불신이다. 검찰은 경찰 수사가 치밀하지 못하고, 소액 매수에 쉽게 오염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찰은 검찰이 상류 권력층과 결탁해 수사를 왜곡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본다. 버닝썬 사건 수사를 둘러싼 양측의 움직임을 들여다보면 그 실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검찰은 경찰이 수사 중인 버닝썬 등 클럽 측과 경찰 간 유착 의혹을 서울중앙지검에 배당했다. 하지만 당장 수사 지휘는 하지 않기로 했다. 중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경찰이 제대로 하는지 두고보겠다는 자세다.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분위기다. 싸늘하다. 경찰은 승리, 정준영 등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경찰총장’으로 언급된 인사를 윤모 총경으로 지목하고 수사 중이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선 그보다 윗선인 전현직 경찰 수뇌부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온다. ‘꼬리 잘라내기’ 아니냐는 것이다.
경찰은 유착 의혹의 초점을 검찰로 분산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연예기획사와의 커넥션은 경찰보다 검찰이 훨씬 심각하다”는 얘기를 퍼뜨린다. 구체적인 연예기획사 명칭까지 거론한다. 여론에 반영하려는 것이다. 수사를 ‘검찰 유착’으로 확산시키려는 의도다.
이렇다 보니 검찰과 경찰을 각각 관할하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나란히 취재진 앞에서 ‘철저 수사’를 다짐하는 브리핑을 하자 검경 모두 반응이 냉소적이다. 특히 검찰 내부에선 박 장관이 장자연 사건, 김 전 차관 사건과 유사한 일의 재발 방지를 위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신설하겠다고 밝힌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 사건에 대한 과거사진상조사가 두 달 이상 남았고, 이후 검찰이 정식 수사를 해야 과거 수사의 부실 여부를 최종 판단할 수 있는데 성급하게 부실 의혹을 사실로 단정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부실로 판명 날 경우 그 책임이 검경 중 어느 쪽에 있는지는 면밀하게 따져볼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박 장관은 검찰 주요 수사권을 가져갈 공수처의 설립 근거로 두 사건을 들었다. “법무부 장관은 경찰 편”이라는 말까지 돈다. 이렇게 검경 갈등은 심각하다.
어쨌든 여론은 세 사건 진상 규명으로 기울었다. 검경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충돌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자체가 바로 그 정황이다. 진상을 명백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는 여론에 직면한 사실을 깨닫고 출구를 찾는 것이다. 그렇게 절박하다면 썩은 팔다리는 잘라낼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은 부지할 수 있다. 그게 수사권 조정에서 떳떳해지는 길이다. 책임 전가에 몰두하다가는 그 책임까지 떠안고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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