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탈북자 25명이 중국 베이징 주재 스페인대사관에 기습적으로 진입한 사건은 북한 인권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집중시킨 계기였다. 이들이 대사관 진입에 성공해 감격의 만세를 부르는 장면이 탈북을 지원한 비정부기구(NGO)가 찍은 영상에 담겨 방송된 이후 상하이, 선양까지 중국 내 외국 공관과 국제학교가 집단 탈북의 루트로 몸살을 앓았고, 유엔 인권이사회의 첫 대북 결의안 통과와 미국 의회의 북한인권법 제정을 촉발했다.
▷그로부터 17년, 이번엔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벌어진 집단 침입 사건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22일 마드리드 북한대사관에 모형 총과 벌목용 칼, 납 몽둥이를 들고 난입해 컴퓨터와 USB메모리 등을 탈취한 괴한 10명은 한국과 미국, 멕시코 국적자로 파악됐다고 스페인 정부가 26일 밝혔다. 이들은 포르투갈을 거쳐 미국으로 출국했고 미 연방수사국(FBI)에 정보를 넘기기도 했다. 그 배후를 자처한 ‘자유조선’은 “평양 정권의 전 세계 대사관들은 온갖 불법을 자행하는 전체주의 체제의 광고 수단일 뿐”이라며 반북(反北) 활동을 정당화했다.
▷자유조선은 재작년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암살된 뒤 그 아들 김한솔을 보호하고 있다고 밝힌 조직이다. 당초 ‘천리마민방위’로 활동하다 올해 3·1절을 계기로 이름을 바꿔 ‘북조선 인민을 대표하는 임시정부’를 선언했다. 말레이시아의 북한대사관 담장에 ‘김정은 타도’ ‘우리는 일어난다’는 낙서를 하고,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바닥에 내던지는 퍼포먼스도 했다. 암호화폐 거래를 통해 ‘해방 이후 자유조선 방문을 위한 비자’를 팔기도 한다.
▷그동안 자유조선은 구성원 소재지 등 모든 게 미스터리였지만 이번 대사관 침입으로 실체가 드러날 수도 있다. 그 주동자는 미국에서 ‘북한자유(LiNK)’라는 NGO를 설립했던 대북 활동가라고 한다. 과거 탈북민 사회에선 망명정부를 만들고 그 구심점으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모시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한때의 아이디어에 그쳤다. 김씨 왕조의 4대 종손 김한솔의 보호자임을 내세워 전투적 행위까지 나선 반북 활동이 어디까지 진화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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