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의 길은 잡힐 듯하면서도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험로였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결렬됨에 따라 남북과 미국의 셈법은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5일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등 최근 현안과 언론 책무’를 주제로 토론했다.》
―미국과 북한의 베트남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한반도 정세가 소용돌이 치고 있습니다. 7개 부처 개각으로 정치권도 분주합니다. 최근 국내외 현안을 중심으로 논의해 보겠습니다.
김종빈 위원장=먼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보도부터 짚어 보죠.
조화순 위원=‘“北, 괌-하와이 전략무기 철수 요구했다”’(3월 22일자 A1면) 기사는 인상적이었습니다. 북-미 회담의 내면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는데 사건의 여파와 한미동맹의 미래, 남북관계 전망 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사자임에도 제3자 입장에서 보도하는 듯한 태도는 아쉬웠습니다.
신용묵 위원=독자 입장에서 ‘비핵화’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궁금했습니다. 각자 위치에 따라 비핵화라는 개념이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만큼 비핵화 개념을 심도 있게 다룰 필요가 있었다고 봅니다. ‘美 요구한 +α(알파)’(3월 8일자 A1면)는 미국의 비핵화 개념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류재천 위원=‘문정인 “하노이 판 깬 건 빅딜 요구한 美”’(3월 13일자 A3면) 기사는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가 한국 정부 대표로 하노이에 가서 직접 본 상황이 아닌데도 마치 상황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주장을 기사화하려면 구체적 근거가 제시되어야 합니다. 또 3월 18, 19일자에 연이어 ‘early harvest(조기 수확)’란 용어가 나오는데 개념이 모호합니다.
이준웅 위원=외교 안보 관련 보도가 분량은 많은데 전반적으로 파편적이었습니다. 매일 발생하는 현안을 쫓아가기보다는 지금 여기쯤 와있다는 큰 그림을 그려줬으면 바람직했을 겁니다.
김 위원장=청와대발(發) 말고 다양한 취재원을 상대로 한 독자적인 내용이 극히 적어 아쉬웠습니다. 청와대 브리핑 내용만 충실하게 보도하는 태도는 문제가 있습니다. 2월 28일자 A1·3·6면에 걸쳐서 하노이 현지 소식을 전할 때 북한 대표단 동정은 소상하게 보도하면서 미국 대표단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보도가 없어 뉴스의 중심이 북한에 치우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습니다.
조 위원=한미동맹의 균열 조짐과 북-미 입장 변화는 좀 더 비판적으로 보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부와 청와대 발언을 소개하는 정도로는 부족할 뿐 아니라 단편적입니다. 비판 기능이 가해져야 언론의 역할을 다하는 것 아닙니까.
류 위원=동맹국인 미국을 앞세워 미북 회담으로 쓰지 않고 왜 북-미 회담이라고 쓰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또 ‘아이돌급 외모로 인기, 현지서 화제 채널A-동아일보 기자들’(3월 1일자 6면) 기사는 꼭 그런 방식으로 자사 홍보를 해야 했는지, 기자를 외모로 평가해야 하는지, 동아일보의 품격에 맞지 않는 기사였습니다.
신 위원=2월 27일자 A1면 ‘美, 北에 영변 핵 폐기만으로는 제재 못 푼다’에 이어 2월 28일자에도 ‘영변 핵 폐기 +α 아니면 안 된다’고 썼어요. 그런데 3월 1일자에 ‘北-美 노딜… 비핵화 ‘하노이 탈선’’이라고 보도했으면 회담 결렬에 대한 심층기사가 나왔어야 합니다.
김 위원장=장관 후보자 검증 보도에서 짚어야 할 점도 논의해 보겠습니다.
신 위원=검증은 시민윤리 검증과 함께 정책 수행 역량이 있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이번 검증 보도를 보면 도덕성 검증은 취재나 제보를 통해 어느 정도 나왔지만, 정책 수행 역량 부분에 대한 검증은 없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이 위원=정책과 관련해 후보자가 어떤 경력을 쌓았고, 어떤 새 정책을 기대할 수 있는지가 포함됐어야 합니다. 위장전입 등 법률 위반이나 도덕성과 관련한 보도도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미흡합니다.
류 위원=동아일보 검증 보도는 타지에 비해 많지 않았습니다. ‘靑 “장관 후보자들 의혹 알고 있었다”’(3월 19일자 A4면)는 청와대도 알고 있는 의혹인데 언론에서 왜 문제를 삼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인식을 줄 수 있는 만큼 비판적으로 보도했어야 했습니다.
조 위원=장관이 왜 바뀌는지, 개각 후 달라지는 것이 있는지 등에 대한 회의감이 듭니다. 정책 수행과는 동떨어진 소모적인 검증이 반복되고 있는 데다 청와대는 의혹투성이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현실이 아쉽습니다.
신 위원=‘총선 나갈 장관 빼고 非文-전문가 채웠다’(3월 9일자 1면)라는 제목은 장관을 ‘전문가로 채우는 것’으로 독자들이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표현이 요구됩니다.
김 위원장=‘한국당 “막말 논란 김연철 철회를”… 李총리 “복수 후보 중 최선의 선택”’(3월 20일자 A5면) 기사에서 이낙연 총리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 지명 철회 요구에 이 총리가 복수의 대상자 중에는 가장 나았다고 답변했습니다. 학자로서 부적절한 언행이 있었지만 취임하면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지명했다는 얘기지만 정작 기사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그럼 청문회와 검증은 대체 왜 하는 겁니까. 주역에 ‘창왕이찰래(彰往而察來)’ 즉, ‘과거를 살펴 미래를 점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새겨볼 말입니다.
조 위원=‘文대통령 “장자연-김학의-버닝썬 낱낱이 수사하라”’(3월 19일자 A1면)는 발언은 마땅히 비판할 필요가 있습니다. 10년 전 사건까지 다 파헤쳐 대통령의 어젠다로 만드는 것은 언론이 지적해야 합니다.
김 위원장=버닝썬 기사와 관련해 왜 ‘윤 총경’으로만 나오고 본명이 거론되지 않죠? 다른 사람은 다 실명이 나오는데, 어느 언론도 윤 총경 이름이 무엇인지 보도하는 곳이 없어요.
이 위원=‘환경부 블랙리스트’를 보도할 때 산하기관 단체장들의 보장된 임기를 지키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책임 행정 관점에서 대통령이 바뀌면 다 같이 바뀌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등 구조적 문제도 함께 다루어야 합니다.
류 위원=3월 5일자 ‘“튀면 너무 힘든 인생”…‘평타’가 목표인 ‘무나니스트’’에서 ‘무나니스트’라는 표현은 좋았습니다만 표본이 142명인 것은 통계적으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조 위원=3월 14일자 A3면 ‘실직자 몰린 건설일용직도 ‘한파’… “한 달에 열흘만 일해도 행운”’의 경우 예정된 보도자료에 현장 취재를 더해 부가가치를 높여준 기사였습니다.
김 위원장=3월 13일자 A1면을 보면 ‘나경원 “대통령이 김정은 대변인” 발언에 여야 대북정책 정면충돌’ 이렇게 제목을 뽑아 놨어요. 외신을 인용한 발언인데 본인이 단정적으로 말한 것처럼 제목으로 뽑은 것은 잘못입니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등이 ‘국가원수모독죄’라고 했는데 사실 국가원수모독죄라는 죄명은 없습니다. 이런 사실 또한 독자들에게 알려주었어야 합니다. 더욱이 민주당 대변인이 특정 기자 이름을 거론하며 ‘매국노’라고 말한 것은 엄청난 모욕이며 언론 자유 침해입니다. 이에 외신기자단체가 성명을 발표한 것을 동아일보는 작게 보도했습니다. 언론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한 사안이 후순위로 밀려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논의한 내용이 앞으로 동아일보 제작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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