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무원들과 규제 문제를 협의해본 기업인들은 담당자가 수시로 바뀌어서 업무 흐름이 끊긴 적이 많다고 토로한다. 툭하면 담당자가 바뀌니 새로 사업 설명을 하는 일만 도돌이표처럼 반복됐고 사업은 계속 표류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처럼 공무원-기업의 갑을(甲乙) 관계가 분명한 문화에서 기업인들은 애만 태우고 있다.
기업인이나 민원인들은 공무원 순환보직제가 무책임의 온상이라고 본다. 발주자와 결정권자가 달라서 진행이 느려지고, 문제가 터지면 책임을 미루고, 어느 순간 담당 공무원이 바뀌면 책임을 물을 사람이 없어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박근혜 정부 시절 규제를 풀어주겠다고 했던 52개 과제의 담당 과장 재임기간을 조사한 결과 평균 1년 정도였다. 한 유전자분석업체 대표는 사업을 추진한 3년 전부터 정권이 바뀐 지금까지 보건복지부 담당 과장이 6번째라고 토로했다. 재임기간이 평균 1년도 안 된 셈이다. 그 기간이면 공무원들이 업무를 좀 시작하다가 곧바로 짐을 싸야 할 판이니 규제 혁신은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민간 기업에서는 리더와 전문가 그룹의 투트랙으로 직원 경력을 관리한다. 리더 후보들은 시야를 넓히기 위해 다양한 부서를 거치게 하고, 전문가 후보들은 특정 분야에 장기 근무를 유도한다. 하지만 공무원 조직은 중앙부처의 일부 업무를 제외하면 전문 분야라는 것이 없고, 전문성을 보인다 해도 순서가 되면 그 부서를 떠나는 게 현실이다. 자리를 서로 나눠 먹자는 공직사회의 주먹구구식 인사패턴 때문이다. 이러니 공무원들은 사고 없이 조용히 있자는 복지부동 자세로 버티게 되고, 분초 단위로 진화하는 글로벌 경쟁무대에서 뒤처지는 것이다. 공무원 조직의 하향 평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공무원의 전문적 역량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 미국 정부부처에선 공무원 전문성을 키우는 보직 관리를 하고 있고, 이스라엘 무기체계 담당관은 적어도 10년은 한 보직에서 경험을 쌓도록 한다. 순환보직제를 없애면 정경유착을 우려하는 지적도 있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는가. 순환보직제를 놔두곤 공무원들의 전문성을 기대할 수 없다. 전문적 역량을 갖춘 공무원들이 규제 혁신의 견인차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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