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96〉‘웃프다’가 어긴 규칙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3일 03시 00분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웃프다’는 ‘웃기면서도 슬프다’는 의미의 비표준어다. ‘웃다’의 ‘웃-’에 ‘슬프다’의 ‘-프다’를 연결한 것으로 젊은 층에서는 흔히 쓰이는 단어다. 공무원 시험에 출제됐는데 오답이 제법 많았다고 한다.

간단히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웃프다’는 이상한 말이다. 우리말은 ‘웃다’와 ‘슬프다’를 합쳐 새말을 만들 때 ‘웃프다’의 방식으로 만들지 않는다. ‘오다’와 ‘가다’를 합쳐보자. ‘오가다’나 ‘오고 가다’다. 실제 의미가 든 부분을 뽑아 만드는 것이 우리말 단어를 만드는 규칙이다. 그래야 이전 단어의 의미를 새 단어로 옮길 수 있다. ‘-프다’에는 이런 의미가 들지 않았다. 단어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웃프다’에 나타나는 관계를 다른 단어들에 적용할 수 있어야 우리말의 규칙이 된다. ‘웃프다’와 비슷한 형식을 가진 말을 떠올려보자.

● 슬프다, 아프다, 고프다

여기서 ‘-프다’는 뭘까. 어원을 보자.
‘슬프다’는 ‘슳다’(옛말)에 ‘-ㅂ·/브-’가 붙은 말이다. ‘-ㅂ·/브-’가 ‘-프다’가 된 것은 앞말 받침 ‘ㅎ’이 ‘ㅂ’과 합쳐져서다. ‘슳다’는 동사이고 ‘슬프다’는 형용사다. ‘-ㅂ·/브-’ 때문에 품사가 바뀐 것이다. ‘아프다, 고프다’에 같은 원리가 적용된 것에 주목하자. 이 ‘-ㅂ·/브-’는 많은 형용사를 남기고 사라졌다. 더 이상 새말을 만들지 못한다는 의미다. 옛 질서를 적용한다 해도 ‘웃프다’는 ‘웃다’를 형용사로 바꿀 뿐 의미를 더하지 못한다. ‘웃음과 슬픔’을 모두 말하지 못한다. 결국 ‘웃프다’는 우리말의 단어를 만드는 규칙을 크게 위배하는 말이다. 하나의 단어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규칙에 관련된 문제라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우리말 질서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웃프다#웃기면서도 슬프다#맞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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