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베트남 여성 도안티흐엉(31)이 다음 달 초 석방된다. 말레이시아 법원은 1일 흐엉에게 3년 4개월 형을 선고했는데 그가 이미 2년 넘게 수감 생활을 한 데다 통상적인 감형 절차까지 고려해 다음 달 풀려나게 됐다. 흐엉과 함께 김정남 살해에 동참한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7)는 지난달 석방돼 본국으로 돌아갔다.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던 김정남 살해 사건은 주범을 밝히지 못한 채 결국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은 누구나 안다.
북한 공작원들은 흐엉과 아이샤의 손에 각기 다른 화학물질을 묻혀 김정남의 얼굴에 바르게 했다. 따로 있으면 독성이 없는 이 물질들은 섞이는 순간 맹독성 독극물 VX로 변한다. 그래서 먼저 화학물질을 바른 아이샤는 멀쩡했지만, 두 번째 화학물질을 바른 흐엉은 독극물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흐엉이 곧바로 화장실에서 손을 씻었지만 구토 증세를 보인 이유다. 재빠르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흐엉도 현장에서 죽었을 것이다.
북한은 VX처럼 두세 가지 물질이 섞이기 전까지는 독성을 띠지 않는 이원화, 삼원화 형태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 독극물들은 북한에서 정치범 등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통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직도 그 실체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이 한창이던 몇 년 전 나는 북한 현직 과학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생화학무기는 북이 가장 숨기고 싶은 것이자 세계가 가장 모르는 분야”라며 “핵을 내놓아도 생화학무기를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또 “핵무기는 사찰이 가능할지 몰라도 화학무기는 사찰이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그 이후에도 여러 북한 출신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북한 생화학무기의 실체에 접근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화학무기의 특수한 제조 과정이 걸림돌이다. 화학무기는 각각 무해한 화학물질을 만든 뒤 특수 제작한 폭탄이나 포탄에 넣어 보관한다. 이것이 폭발해 물질이 섞이는 순간 살상무기가 된다. 따라서 화학무기는 화학 공식을 만드는 개발자만 진실을 파악할 뿐 생산자들은 자신이 화학무기용 물질을 만든다는 사실조차 알기 어렵다. 반면 핵무기는 개발자나 현장 생산자 등이 모두 핵무기를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 화학무기 생산의 중추는 화학산업 연구의 핵심인 과학원 산하 함흥분원으로 추정된다. 함흥분원에는 화학공학연구소, 화학실험기구연구소, 화학재료연구소, 유기화학연구소, 무기화학연구소, 분석화학연구소 등 10개의 직속 연구소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함흥분원 옆에는 국방과학원 소속인 화학재료연구소가 있으며, 자강도 강계에도 화학 관련 연구시설이 있다. 이 중 어디에서 화학무기가 설계되고 만들어지는지를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
화학무기 연구소와 생산 라인이 같이 있다는 점도 북한 화학무기의 실체를 알기 어렵게 만든다. 특정 물질이 개발되면 필요한 양만 생산하고 해당 생산라인은 멈춰진다. 만들어진 물질은 화학무기를 운용하는 부대에서 직접 수령해 무기화한다. 미사일 운영 특수부대인 ‘전략군’처럼 화학무기 운영 전담 부대도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생물무기 개발의 목표는 한국군의 전투력 상실에 있다고 한다. 특히 장염을 일으키는 생물무기가 이미 여러 종이 생산됐다는 증언도 있다. 탄저균처럼 치명적 균도 연구를 끝낸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화학무기를 수출까지 한다. 대표적으로 시리아 정부군이 사용한 화학무기엔 북한의 기술이 사용됐다. 지난해 2월 발행된 유엔의 비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대부터 시리아의 화학무기 생산을 지원했고 기술자들도 파견했다. 미국 국방정보국 한국 담당 연구원이었던 브루스 벡톨은 2007년에 사린가스와 VX로 채워진 탄두가 실수로 폭발하면서 북한 및 이란 지원단과 시리아 기술자들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북한의 생화학무기는 김정남 암살을 계기로 반짝 조명됐지만 다시 수면 아래로 묻히게 됐다. 어쩌면 김정은 정권이 존재하는 한 영영 베일에 감춰질지도 모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