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지금 내 나이는 ‘봄’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6일 03시 00분


<78> 사이먼&가펑클의 ‘April Come She Will’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4월이 오면, 냇물이 봄비로 넘실거리고 봄기운이 터질 듯할 때, 그녀는 나를 찾아올 거야.”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과 함께 기타를 좀 치는 사람이라는 자격증으로 통용되었던 스리핑거 전주가, 얼어붙었던 냇물이 녹아 졸졸 흐르는 초봄의 풍경을 그려줍니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담백한 화음이 이를 이어받아 계절의, 인생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사랑과 삶의 모습을 짧고 깊게 묘사하죠. 벌써 4월입니다. 어릴 땐 시간이 그렇게 더뎠는데,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흘러가서, 이제는 시간이 쏜살같죠. 실제로 시간은 나이가 들수록 빠르게 갑니다. 그 뇌 의학적, 심리학적인 근거들도 있죠.

먼저 뇌의 정보 전달 속도와 생체시계 속도는 나이가 들수록 느려집니다. 어릴 때는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세상이 느린 화면처럼 느껴지지만, 나이가 들수록 정보 처리 속도가 느려져서 상대적으로 세상이 빠르게 느껴지죠. 정보를 통합하는 신경회로는 도파민이 조절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도파민의 분비량과 반응이 감소합니다. 뇌의 속도가 느려지니까 반대로 세상은 빨라지죠. 실제로 도파민계의 각성제는 전달 속도를 올려서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도파민을 억제하는 조현증 치료제는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착각을 유발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의 양은 줄어듭니다. 어릴 땐 모든 것이 새로워서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나이가 들며 반복된 일상을 거듭하다 보면 기억해야 할 정보의 양은 점차 줄어듭니다. 기억할 것이 적어지면 시간은 빠르게 흐르죠. 낯선 길을 갈 땐 멀지만 돌아올 땐 가까운 것처럼. 또한 열 살 때의 1년은 인생의 10분의 1이지만 50세에게 1년은 50분의 1이죠. 일정 시간의 비율은 나이가 들수록 상대적으로 짧아지기에,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집니다.

마지막 이유는 우리의 안녕을 갉아먹는 가장 큰 이유, 불안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책임도 커지고 한계도 직면하게 됩니다. 삶의 불편함을 설명하기 위한 의미를 찾지만 살수록 걱정은 늘어가고 의미는 늘 모호하죠.

시간의 흐름을 늦추고, 그 시간을 봄비로 넘실거리는 냇물처럼 풍요롭게 만들려면, 먼저 신체 나이가 아닌 계절의 나이를 살아야 합니다. 봄을 느끼지만 말고 봄을 살아야 합니다. 봄에 걸맞은 생활을 해야 하죠. 세월을 핑계 삼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고 새로운 자극과 목적을 찾아 도전해야 합니다. 용기가 필요하죠.

활력 있고 보람된 생활을 하면 느려졌던 뇌의 정보전달 속도가 빨라집니다. 다시 젊어질 필요는 없어도, 삶은 잘 음미할 필요는 있죠. “계절은 이렇게 쉽게 오가는데, 우린 또 얼마나 어렵게 사랑해야 하는지?”라는 부정적인 경험에 의한 회의가 앞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란 큰스님의 말씀처럼, 왜곡되지 않은 눈으로 현실을 직시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있다면 우리의 뇌와 가슴에 봄이 들어올 것이고, 시간은 점점 느려지고, 삶에는 더 많은 음표와 느낌표들이 생길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봄이 왔습니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이먼&가펑클#april come she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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