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은 오랜 기다림이며 순간의 이별이다. 고교 시절 읽은 일본 소설 ‘대망’에 벚꽃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전쟁을 하지 않는다. 봄이 되면 전쟁을 시작하는데 출정 시기가 벚꽃이 필 때다. 눈처럼 흩날리는 벚나무 아래서 출정식을 한다. 이런 벚꽃이 3월 하순 남쪽지방에서 화사한 속내를 드러내더니 북으로 숨차게 올라와 여의도 윤중제까지 피었다. “어서 오렴. 얼마나 기다렸는지.”
사람들에게 벚꽃은 어떤 의미일까. ‘겨울 내내 드러내지 않던 은밀한 사랑/견디다 못해 어쩌지 못해/봄볕에 몸이 화끈하게 달더니/온 세상 천지에 소문내고 있구나/웃음꽃 활짝 피워 감동시키는구나.’ 용혜원 시인에게 벚꽃은 사랑이며 감동이다. ‘나는 거짓과 모든 형태의 폭력을 증오한다. 내게 가장 신성한 것은 건강한 육체, 지혜, 영감, 사랑이다.’ 안톤 체호프는 희곡 ‘벚꽃 동산’을 통해 부정적인 것을 넘어서고자 한다. 체호프에게 벚꽃은 과거를 넘어서는 진정한 삶의 존재다.
벚꽃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본인이다. 일본 기상청이 벚꽃 개화 시기를 잘못 예보했다고 대국민 사과를 한 적도 있다. 호우나 태풍이 아닌 벚꽃 예보가 틀렸다고 대국민 사과를 하다니. 그 정도로 그들의 벚꽃 사랑은 광적이다. 벚나무 아래 자리를 펴놓고 벌이는 ‘하나미(벚꽃놀이)’는 일본인의 애착이며 자랑이다. 그런데 벚꽃은 일본의 국화도 아니며 전유물은 더더욱 아니다. 파리 에펠탑의 4월은 벚꽃으로 너무 아름답다. 파리지앵들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잔디밭에 누워 벚꽃을 즐긴다. 필자가 잠시 공부했던 독일 함부르크에도 벚꽃이 너무 화사하다.
일본에는 벚꽃과 연관된 영화가 많다. ‘벚꽃동산’은 소녀들이 가질 법한 비밀과 환상들, 성적인 호기심과 그것이 가진 모호함, 기성세대에 대한 막연한 저항감을 그렸다. 그러나 감독 나카하라 슌이 말하고 싶은 벚꽃은, 무언가를 함께 성취한다는 것에 대한 기대와 즐거움인 듯하다. 영화 ‘초속 5cm’에서 벚꽃이 날리는 장면은 환상적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루어지지 못한 남자들의 첫사랑 이야기를 벚꽃 속에 잘 녹였다. 영화가 시작되는 장면에 폭설처럼 떨어져 내리는 벚꽃이 너무 아름다운 ‘4월 이야기’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첫사랑 이야기다. 벚꽃이 쏟아져 내릴 때 우산을 쓴다는 것도 이 영화에서 처음 봤다. 한국 영화 중에는 황정민 전도연이 벚꽃 아래에서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죽을 때까지 너만 사랑할게”라는 고백을 나누는 ‘너는 내 운명’이 기억난다.
‘벚꽃이 흩날린다 서러워 마라/꽃의 시대를 땅에 묻고/흐드러진 열매 맺는 시대 키워/모두가 함께 따는 날을 꿈 꾼다/흩날리는 벚꽃은 눈물이 아니다/희망의 앞날을 기약하는 축복일 뿐이니.’(최범영의 ‘벚꽃이 흩날린다고 서러워마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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