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동해안 일대를 사흘간 휩쓴 산불은 서울 여의도 면적의 2배가 넘는 임야를 태우고 지역 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산불이 할퀴고 간 상처가 아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민관이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에 신속하게 나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소방청이 화재 발생 1시간여 만에 수도권과 충북 지역의 소방차 출동을 지시하고 곧 이를 전국으로 확대한 것은 피해 규모를 줄이는 데 주효했다. 순식간에 출동한 870여 대의 소방차와 3200여 명의 소방관은 강풍을 타고 빠르게 번지는 불길과 용감하게 싸웠다. 특히 소방헬기가 투입될 수 없었던 야간에 속초의 한 액화석유가스(LPG) 충전소에서 소방관 5명이 방화복과 소방호스에 의지해 주택가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으려 애쓰는 모습은 사명감으로 헌신하는 영웅의 모습 그 자체였다.
경찰은 화재 현장 인근에 위치한 화약고에 보관 중이던 폭약 5t을 신속하게 안전한 장소로 옮겨 대형사고를 막았다. 산림청 산림항공관리소 공중진화대원들도 불갈퀴를 들고 깊은 산속에서 불길을 막아섰다. 시민들의 용기도 기억해야 한다. 속초의 음식 배달원들은 강풍 속에서 오토바이로 거동이 어려운 홀몸노인들을 대피시켰다. 수학여행 중학생들을 태운 버스가 산불과 맞닥뜨렸을 때, 교사와 버스 기사는 불이 붙은 차문을 침착하게 수동으로 열고 대피 조치를 취해 참변을 막을 수 있었다.
화마가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제복을 입은 영웅들은 사명감으로 밤을 하얗게 밝히며 이번 화재가 더 큰 비극이 되는 것을 막았다. 생명과 전 재산이 경각에 처한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이웃을 챙긴 주민들의 성숙한 대응도 우리 사회에 희망을 줬다. 숱한 재난을 겪으며 업그레이드시킨 재난 대응 시스템과 교육과 홍보로 숙지한 행동수칙 등이 실제 위기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자랑스럽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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