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이 싸늘한 여론을 무릅쓰고 교육부 차관보 신설을 강행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혁신적 포용국가’에서 성과를 내려면 사회부총리 기능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에서 실점했으나 복지에선 득점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그만큼 확고하다. 최근 만난 사회복지계 원로는 “문재인 정부 들어 사회복지계의 모든 숙원이 풀렸다”고 했다. “세수가 넘치는 것도 이 정부의 복(福)”이라면서.
‘혁신’과 ‘포용’을 나란히 세워 알쏭달쏭하게 들리지만 ‘혁신적 포용국가’는 결국 선별적 복지를 보편적 복지로 전환하고, 개인이 실패를 감수하도록 사회안전망을 갖춰 혁신이 일어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역대 정부마다 ‘퍼주기’라는 인식과 예산 부족으로 진전이 없었던 기초연금과 장애인연금이 30만 원까지 인상됐고, 아동수당(10만 원)이 도입됐다. 건강보험 보장 범위가 착착 넓어지고 있고 실업급여는 평균임금의 60%까지, 육아휴직 급여는 50%까지 올랐다. 이대로라면 문재인 정부의 브랜드는 ‘포용국가’가 될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을 두고 “세계적으로 족보 있는 이야기”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 됐는데 굳이 족보를 따진다면 1929년 대공황 이후 경제냐, 분배냐 하는 오랜 실험의 흐름 속에 있는 ‘혁신적 포용국가’야말로 뼈대 있는 정책이다. 우리나라도 경제와 복지가 동반성장한 실증적인 사례다. 비록 권위주의 정부의 정치적 계산이 깔렸지만 1977년 건강보험(의료보험), 1988년 국민연금 도입으로 산업역군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반세기 만에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이뤄냈다. 저성장이 ‘뉴노멀’이 된 시대, 저출산·고령화 위기에 맞서 이번에도 정부는 ‘포용국가’를 해법으로 삼으려 한다.
그러려면 답이 뻔한 문제를 하나 풀어야 한다. 경제가 압축성장하는 과정에서 양극화가 심화됐듯이, 복지가 압축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수혜가 독점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지난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정규직 월평균 임금(300만9000원)은 비정규직(164만4000원)의 1.83배다. 그런데 생애 전반에 걸친 복지 격차는 이보다 크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에 비해 국민연금 가입률은 2.35배, 건강보험 가입률은 1.96배, 고용보험 가입률은 2배 높다. 아파도, 실직해도, 은퇴해도 비정규직은 기댈 곳이 없다. 복지를 확대하면 할수록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복지 격차’가 벌어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질적, 양적으로 팽창한 복지가 골고루 분배되려면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가 시급하건만 ‘포용국가’ 어디서도 이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청년들은 복지 빈곤층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 취직을 못 했거나(청년고용률 42.9%) 취직을 했더라도 비정규직을 전전해(20대 비정규직 비율 32.3%) 사회보험에 가입할 여력이 없고, 각종 혜택이 집중된 결혼과 출산을 멀리 미뤄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들만의 철옹성을 쌓고 있는 공공부문·대기업 노조와의 정면대결을 피한 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같은 정책으로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고 있다. 청년들은 ‘포용국가’에서조차 소외계층이 되고 있다. 이러니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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