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면적의 1%를 늘린 서산간척사업은 한국 건설사(史)의 거대한 도전이었다. 1984년 천수만 물살이 너무 빨라 공사에 진척이 없자 현대건설은 대형 유조선을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물길을 막아 방조제 연결에 성공했다. 공사 기간을 3년이나 단축시킨 이 공법은 ‘정주영 공법’으로 이름 붙여져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소개됐다. 이때 “이봐, 해봤어?”라는 어록을 남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건설은 창조’라는 말을 자주 썼다. 1970, 8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 중동 신화로 상징되는 건설사를 돌이켜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한국 경제 고도성장의 초석이 된 건설업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 이미지가 큰 것도 사실이다. 창조, 혁신보다는 마구 밀어붙이는 불도저나 삽질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잖다. 건설 현장의 근로자를 속칭 ‘노가다’라고 폄하해 부른 지 오래고, 최근엔 ‘토건족’이라는 말까지 들린다. ‘한강의 기적’을 위해 이뤄진 숱한 공사와 수주 과정에서 불법, 비리, 혼탁 행위 등이 부지기수로 빚어진 결과다. 그래서일까. 건설업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법정 용어도 ‘건설업자’였다. 업자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업자와 결탁해 공금을 빼돌리다”는 예시를 제시할 정도로 부정적 뉘앙스가 짙다.
▷그런데 최근 건설업자라는 법정 용어를 ‘건설사업자’로 바꾸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1958년 건설업법 제정 때부터 건설업자 명칭이 쓰인 지 61년 만의 변화다. 건설업 종사자를 비하하는 업자라는 말을 바꿔달라고 업계가 힘쓴 결과다. ‘사’자 하나 붙었을 뿐인데 업계에선 “건설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워줬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건설업 이미지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지난해 8월엔 건설기술자를 건설기술인으로 바꾸는 법 개정도 이뤄졌다.
▷하지만 업자에서 사업자로 격상된 종사자들과 달리 한국 건설업의 글로벌 위상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최근 공개된 ‘건설산업 글로벌 경쟁력’ 평가에서 우리 순위는 재작년 6위에서 지난해 12위로 급락했다. 10위 밖으로 밀려난 건 평가를 시작한 2011년 이후 처음이다. 밖에선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의 공세에 밀리고, 안에선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축소, 건설·부동산 규제 강화가 이어진 탓이다. 국가 중추 산업인 건설업의 경쟁력 추락을 정부는 그냥 두고 봐서는 안 된다. 건설사업자들도 권력자의 스폰서로 이름을 올리는 구태 이미지를 완전히 벗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춘 신산업으로 도약할 길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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