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어제 형법의 낙태 처벌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임신 기간을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로부터 22주까지와 22주 이후로 2단계로 구분한 뒤 임신 22주 이내의 낙태까지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봤다. 다만 당장의 위헌 결정이 초래할 법적 공백을 우려해 2020년 말까지 개선 입법을 할 시간적 여유를 줬다. 1953년 만들어진 낙태죄를 66년 만에 처음으로 손보게 됐다.
헌재는 임신 22주 이후로는 태아의 독자적 생존이 가능하다고 보고 낙태를 금지하는 기준으로 제시했다. 다만 헌재 헌법불합치 결정에 흡수된 3인의 단순위헌의견이 임신 14주를 기준으로 제시한 걸 보면 고작 4인이 주장한 22주가 논란의 여지없는 의학적 기준인지 의문이다. 22주 이내의 언제까지 낙태를 허용할지는 입법과정에서 보다 엄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1960년대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 낙태를 합법화했다. 미국도 1973년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사건 판결 이후 임신 기간을 3단계로 나눠 1, 2단계의 낙태를 원칙적으로 합법화했다. 한국은 사회적 변화가 선진국에 뒤처지긴 했지만 늦게나마 출산에 대한 관념이 크게 변한 것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법은 66년 전 그대로여서 현실과의 괴리가 커졌다. 우리나라의 낙태 시술은 한 해 평균 3000건이 넘는다. 그러나 기소되는 경우는 1년에 10건 내외다. 기소돼도 실형 선고는 거의 없다. 이번 헌재 판결이 생명윤리 훼손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법과 현실의 괴리를 좁힐 것은 틀림없다.
헌재 결정은 모자보건법상의 낙태 정당화 사유에 포함되지 않은 사회적 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까지 허용하는 것을 뜻한다. 원치 않는 혼외 임신을 했을 경우, 더 이상의 자녀를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을 경우, 학교나 직장 생활에 지장을 줄 경우에도 낙태할 수 있다. 낙태가 허용되면 그동안 음성적으로 주고받던 낙태 관련 정보를 얻기 쉬워지고 낙태 시술도 공개적으로 할 수 있어 의료사고나 후유증이 발생할 경우 법적 구제도 받을 수 있게 된다. 낙태 시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수술비도 크게 내려갈 수 있다.
그러나 낙태가 수월해지면서 자칫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우리나라는 엄격한 낙태죄가 있을 때도 낙태가 많던 나라다. 남미나 동유럽의 가톨릭 교회나 미국의 근본주의 개신교 세력처럼 낙태 반대를 사회적으로 캠페인하는 세력도 크지 않다. 출산과 양육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정책만이 그나마 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줄이고 출산율도 높일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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