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식의 스포츠&]한국판 제이미 바디를 기다리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2일 03시 00분


레스터시티의 스트라이커 제이미 바디(앞)는 공격뿐 아니라 수비 능력도 뛰어나다. 바디는 레스터시티의 수비 후 역습 전술에 앞장섰다. 사진 출처 레스터시티 홈페이지
레스터시티의 스트라이커 제이미 바디(앞)는 공격뿐 아니라 수비 능력도 뛰어나다. 바디는 레스터시티의 수비 후 역습 전술에 앞장섰다. 사진 출처 레스터시티 홈페이지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잘 만들어진 스포츠 영화를 보면 가슴이 찡해진다. 역경을 이겨낸 인간 승리는 감동과 함께 용기를 준다. 주인공이 실존 인물이라면 더 그렇다. 2005년 개봉된 복싱영화 ‘신데렐라 맨’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암흑기였던 1930년대 대공황 시절, 전도유망했던 라이트 헤비급 복서 제임스 브래독(러셀 크로)은 부상 탓에 복싱을 포기한다. 아내(르네이 젤위거)와 자녀 3명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으로서 부두 하역일 등 허드렛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간다.

하지만 꿈을 단념하지 못한 브래독은 경기 중 도전자 2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악랄한 챔피언 맥스 베어와의 대결이 성사돼 다시 링에 올라 혈투 끝에 승리한다. 암울한 대공황 시대의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선사한 헝그리 복서의 가족 사랑이 뭉클한 감동을 주는 실화다.

영국의 축구선수 제이미 바디(32·레스터시티)는 ‘프리미어리그의 신데렐라 맨’으로 불린다. 훗날 영화화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요소도 갖췄다.

바디는 고향인 셰필드의 웬즈데이FC의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2007년 8부 리그 팀인 스톡스브리지 파크 스틸스 입단 당시 받은 주급은 고작 30파운드(약 5만 원). 공장에 다니며 운동을 계속한 그는 폭행사건으로 전자발찌를 차게 됐고 한동안 오후 6시까지만 활동이 허락됐기에 전반전까지만 뛰고 귀가한 적도 있다.

상위 리그 팀으로 이적하며 승승장구한 바디는 2013∼2014시즌 2부 리그 우승의 주역으로서 레스터시티의 1부 리그 승격과 2015∼2016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동화 같은 이야기다. 역대 프리미어리그 최다 연속경기 골 기록(11경기) 보유자인 바디의 이번 시즌 주급은 8만 파운드(약 1억2000만 원). 12년 전 주급의 2400배나 된다.

대한체육회와 대한축구협회는 지난달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콜롬비아 친선전 하프타임에 K5, K6, K7리그 출범식을 가졌다. K5(광역리그), K6(시도리그), K7(시군구리그)은 아마추어 동호인 축구리그다. 대한체육회가 주최하고 대한축구협회가 주관한다. 프로인 K1∼K4를 포함해 한국 축구 전체를 연계시킨 디비전 시스템은 2026년 완성될 예정이다. 각 리그의 상위팀은 상부리그로 승격하고, 하위 팀은 하부리그로 강등된다.

2019년 현재 K7은 전국 164개 시군구의 1001개 팀, K6는 전국 30개 시도의 190개 팀이 참가했고 올해 구성되는 K5는 11개 리그에 66개 팀이 참가한다.

대한체육회 스포츠클럽부 심상보 부장은 “우리나라처럼 전문 선수와 동호인 선수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서로 진입 장벽이 있는 현실에선 저변 확대는 물론이고 시스템의 선진화도 불가능하다. 이미 지역 단위로 활성화되어 있는 축구의 디비전 시스템이 성공한다면 다른 종목도 수준별 대회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저출산 시대의 선수 수급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고 그 취지를 밝혔다.

실제로 스포츠 선진국들은 대부분 디비전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축구를 예로 들면 영국(프리미어리그·프로 1∼5부, 아마추어 6∼24부)과 독일(분데스리가·프로 1∼5부, 아마추어 6∼12부), 일본(J리그·프로 1∼4부, 아마추어 5∼6부) 등은 축구를 통해 지역 주민들이 소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스템이 그럴듯해도 운용이 서투르면 말짱 도루묵이다. 특히 국내 축구계의 오랜 논쟁거리인 ‘강제 승강제’는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기업구단에 비해 지방자치단체의 시민구단은 모든 면에서 열세다. 2부 리그에서 우승했다고 지원과 대책 없이 의무적으로 1부 리그로 올라온 시민구단은 동네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2부 리그로 강등된 기업구단은 존폐의 기로에 설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메달 수로는 스포츠 강국이지만 스포츠 선진국은 아니다. 과거의 낡은 시스템으로는 스포츠에 대한 국민의 새로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성공확률 1%가 안 되는 운동선수의 길로 들어선 후 공부와 담을 쌓고 운동만 하다가 도태되면 사회 낙오자가 되기 일쑤다. 게다가 대학 진학을 위한 성적 지상주의로 인해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를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게 실상이다.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의 개선은 시급하다. 그에 못지않게 일반 학생 등 모든 국민이 다양한 스포츠를 각자 수준에 맞게 즐기며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한다. ‘스포츠가 일상, 일상이 스포츠’가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ysahn@donga.com
#레스터시티#제이미 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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