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건물 앞에 ‘A 교수 파면하라’는 현수막이 붙은 천막이 세워졌다.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 이수빈 씨(22)는 11일 오후 수업을 마치고 여느 때처럼 이 천막으로 향했다. 이 씨는 지친 표정으로 천막에 들어가 테이블 앞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물과 소금이 놓여 있었다. 그는 물과 소금에 의지해 9일째 단식을 이어오고 있다. 그 사이 몸무게가 7kg 줄었다. 현기증과 복통에 시달리는 몸으로 수업에 들어가고, 수업이 없을 땐 다시 천막으로 돌아가 허기와 싸우는 게 그의 일상이다.
“힘들지만 단식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네요. 서어서문학과 A 교수가 파면될 때까지 계속할 겁니다.”
A 교수는 2017년 제자를 성추행한 의혹을 받고 있다. A 교수가 해외 출장지에서 허벅지를 만지고 강제로 팔짱을 끼게 했다는 게 피해 학생의 주장이다. 또 특정 여학생에게 단둘이 등산을 가자고 강요하고 제자들이 술자리에서 일찍 떠나려고 하면 공개 비난을 했다는 증언도 여럿 나왔다. 서울대 인권센터는 A 교수가 성추행을 한 정황이 있다고 보고 학교 측에 정직 3개월 처분을 권고했다.
아직 징계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벌써부터 결사항전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 씨뿐 아니라 다른 단과대 학생 70여 명도 A 교수의 파면을 요구하며 길게는 사흘간 단식에 동참했다. 2일 학생 500여 명이 교내에서 시위를 했고 10일엔 인문대 학생 80여 명이 동맹휴업에 나서기도 했다.
학생들이 징계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집단행동에 나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갑질과 성추행 의혹을 받았던 사회학과 B 교수에 대한 징계가 정직 3개월에 그치자 학생들은 충격에 빠졌다. 당시 총학생회장은 솜방망이 징계에 항의하며 13일간 단식을 했다. 성낙인 당시 총장까지 나서 “징계 수위가 낮다”는 의견을 밝혔지만 징계위원회 재심의에서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대 A 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 윤민정 공동대표(23·여·정치외교학부)는 “가해 교수가 교수직을 유지할 경우 학계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피해자나 피해자를 도왔던 학생들은 향후 진로에 불이익을 받는 등 2차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A 교수의 경우도 B 교수의 전례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대가 준용하는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정직 3개월은 해임 바로 아래 단계의 징계 처분이다. 서울대는 해임까지 하는 게 너무 가혹할 경우 정직 3개월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성폭력 관련 자체 징계 규정을 만드는 등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이마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열풍 이후 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눈높이는 크게 높아졌다. 서울대는 이 같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제2, 제3의 A 교수가 계속 나와도 합당한 징계를 하기 어렵다. 이 씨의 단식이 부질없는 투쟁으로 끝나지 않도록 ‘정직 3개월’이라는 장애물을 이제는 없앨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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