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의 패션 談談]〈18〉엿보기의 두 얼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3일 03시 00분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패션매장을 방문해 진열된 옷 사이를 한참 뒤적입니다. 몇 벌을 골라 입어 보다 거울 앞에서 또 한참을 고민하죠. 그러고는 “나 어때?”라고 물어봅니다. 그나마 친한 친구가 옆에서 보고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거울이 발명된 후에도 패션에서 ‘엿보기’는 항상 존재했습니다. 패션은 굳이 묻지 않아도 입는 이의 사고방식이나 성격, 취향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길거리에 넘쳐 나는 사람들의 패션은 전문가의 엿보기를 통해 분석돼 ‘스트리트 패션’이라는 전문용어로 탄생했습니다. 사람들의 기호와 성향을 파악하고 그들이 다음에 무엇을 원하는지 예측하게 되죠. 그래서 패션은 늘 엿보기를 통해서 전파되고 유행됩니다.

과거 왕족이나 귀족들의 파티에서 선보인 패션을 훑으며 눈을 통한 엿보기로 평민계층이 추종했다면 현대에 와서는 카메라라는 새로운 눈을 통해 패션의 엿보기가 시작됐습니다. 패션 매거진의 등장으로 직접 엿보기 하는 수고를 하지 않더라도 전문가의 시선과 손길로 다듬어진 멋진 장면들을 즐길 수 있게 됐죠.

영화는 더 멋진 엿보기를 제공했습니다. 카메라의 눈과 관객의 눈이 하나가 되어 스크린 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패션을 실제로 엿보기 하듯 바라봅니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이창’은 주인공인 사진작가 제프의 시선을 통해 건너편 아파트의 다양한 이웃들의 생활을 엿보는 데서 출발합니다. 자유분방한 무용가, 보청기를 끼는 예술가 할머니, 새를 키우는 이웃, 세일즈맨과 매일 잔소리하는 아내 그리고 신혼부부…. 사고로 휠체어 신세를 지는 제프는 이웃의 삶을 엿보기 함으로써 무료함을 달래지요. 의외로 이웃들은 창문을 활짝 열고 그들의 사생활을 공개합니다. 배우들의 대사, 움직임 그리고 그들이 입은 패션이 하나가 되어 내 옆에 있는 듯합니다. 아무런 방해 없이 한두 시간 동안 건전한 엿보기를 통해 그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패션을 감상하는 일은 미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죠.

직접적으로 패션을 통한 엿보기는 패션쇼 런웨이에서 이루어집니다. 모델들이 눈앞에서 아무런 대사 없이 음악에 맞춰 런웨이를 활보합니다. 실제로 만질 수 있고 입을 수 있는 의상들로 한편의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 같습니다. 이 직접적인 엿보기를 통해 에디터는 소비자들에게 유행을 전파하고 바이어는 소비자들에게 의상을 공급해 패션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엿보기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단톡방 동영상’이다 ‘카톡방 몰카’다 하며 뉴스에서 하루도 빠질 날이 없습니다. 이 엿보기를 만든 사람도 문제고 유포한 사람도 문제겠지요. 하지만 건전한 엿보기도 은근히 많답니다. 범인을 검거하기 위한 잠복근무도 엿보기이고 아이의 첫 등굣길을 몰래 지켜보는 어머니의 시선도 엿보기입니다. 물론 패션을 통한 엿보기도 그중의 하나이고요. 모쪼록 인간의 호기심이 만들어낸 이 엿보기가 건전하게 쓰였으면 합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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