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위해 환웅은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고조선의 건국신화에서 바람, 비, 구름을 관장하는 세 기상신 중 이름에 우두머리를 뜻하는 백(伯) 자를 쓰는 풍백이 다른 신들보다 격이 높다. 풍백, 우사, 운사를 고조선의 관직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은 풍백이 ‘총리’에 해당하는 선두에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날씨에서도 비와 구름에 앞서는 기상 조건이 바람이다. 기압 차이가 생겨야 바람이 불고, 바람이 습한 공기와 만나야 구름이 생긴다. 그리고 구름이 모여야 비가 되니 역시 바람이 구름과 비에 앞선다. 이처럼 풍백이 우사와 운사보다 위에 있는 것이 논리적이고 순리에 맞다. 우리 신화에 등장하는 날씨의 신이 다른 문화권의 기상신보다 부드럽게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합리성과 더불어 이들의 존재 이유가 홍익인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단군신화의 풍백은 최고의 기상신이지만 우리에게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에 비해 외국의 기상신은 위협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신화 속 최고의 신들은 공포와 위엄을 상징하는 천둥과 번개를 관장하는 신으로 그려진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나 수메르의 엔릴, 북유럽 신화의 토르는 모두 주신(主神)이면서 동시에 천둥의 신이기도 하다.
변화무쌍하고 예측할 수 없는 날씨는 고대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점차 농경문화가 정착되면서 농사에 도움이 되는 강우와 관련된 기상신은 은혜를 베푸는 선한 이미지로 바뀌어간다. 인도의 바람의 신 바유는 금빛 의자에 앉아 하늘을 달리며 세상에 광명을 주고 사람에게 자손과 복덕을 내리는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리스 신화의 서풍(西風)의 신 제피로스는 봄을 재촉하며 ‘모든 씨앗을 자라게 하는 신’으로 숭배되는데 꽃과 봄의 여신인 플로라와 함께 등장한다.
한편 고대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판테온에 모셔진 기상신 아다드는 서로 모순되는 양면성을 지녔다. 비와 바람으로 땅을 비옥하게 해 풍요를 가져다주지만 폭풍우와 홍수로 파괴와 죽음을 초래하기도 한다. 영남과 제주 등지에서 전래되는 설화에는 바람을 다스리는 영등할미가 풍어와 풍년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변덕이 심해 풍랑을 일으키고 피해를 주기도 해서 매년 음력 2월이면 영등할미를 달래는 제사가 열린다.
바람은 적절해야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인간은 바람을 다스려 줄 풍백과 같은 신적 존재를 바랐을 것이다. 최근 우리는 바람 때문에 이래저래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약해진 바람으로 대기가 정체되면서 전국을 뒤덮은 미세먼지로 많은 사람이 힘들어했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국지적 강풍인 ‘양간지풍’으로 산불이 번져가는 것을 막지 못해 엄청난 피해를 봤다. 홍익인간을 위해 바람을 다스리라는 명을 받은 풍백이 올봄에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