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훌륭한 인재도 정작 실제 업무에서 자기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훌륭한 인재를 발탁하는 일만큼이나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역량을 십분 발휘하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조선시대의 왕들도 수천 명의 인재를 제대로 관리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인사를 전담하는 부서인 ‘전조(銓曹·이조와 병조)’와 담당자인 ‘전관’을 따로 둘 정도였다. 그래도 인사 업무는 늘 뜻대로 되지 않는 골치 아픈 일이었다. 이 같은 난관을 뚫고자 노력한 인사 전문가가 있었으니, 바로 조선 초기 대표적인 문인 학자 강희맹(1424∼1483)이다.
강희맹은 인사에 대한 탁월한 식견과 대책으로 세종 때부터 성종에 이르기까지 왕들의 총애를 얻어 인사 관련 요직을 지냈다. 그가 왕에게 제출한 인사 관련 상소 내용을 살펴보면 오늘날에도 참고할 지혜가 많다.
먼저 그는 인사 업무가 잘 돌아가지 않는 이유로, 사람은 누구나 처음 업무를 맡았을 때는 부지런하지만 나중에는 게을러져서 방심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강희맹은 본인이 병조판서에 처음 제수됐을 때의 경험을 고백했다. 그는 “처음에는 단 한 사람을 뽑을지라도 반드시 적임자인지 아닌지를 세 번 살폈는데, 두어 달이 지난 후에는 점차 관례에 익숙해져 명부를 비스듬히 한 번 흘겨보게 됐다”며 “얼핏 보면 유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일이 익숙해져 마음을 제대로 쓰지 않은 것이었다”고 했다.
누구나 업무가 낯설 때는 긴장감을 유지하며 잘못된 부분이 없도록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인다. 하지만 업무에 익숙해지면 나태하고 습관적으로 일을 대하기 쉽다. 그러다 보면 실수나 착오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된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강희맹은 인사 업무를 책임지는 이조판서의 경우 1년을 기한으로 임기를 제한하자고 왕에게 제안한다. 인사 업무의 전문성이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지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해당 업무에 집중하도록 하자는 취지만큼은 오늘날 인사 경영에도 유효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강희맹은 이조판서 시절 연공서열에 따른 승진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오로지 서류에 의지해 성적을 살폈고, 재직 연수에 따라 승진의 차례를 정했다”며 “마음속으로 어떤 이가 가진 용렬함을 알더라도 임기를 채우면 전례에 따라 승진시켜 관직을 제수했다”고 반성했다. 연공서열에 따른 승진 시스템의 장점은 기준이 객관적이고 투명해서 권력자의 사사로운 개입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강희맹도 이런 장점을 잘 알았다. 그는 “법률과 규정을 개혁할 방법이 없는 데다 혹시라도 개혁하려 들면 사사로움을 행한 것이 돼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고 곤란함을 호소했다. 어질고 훌륭한 인재가 있어 전격적으로 발탁하고 승진시키고 싶어도 법에 위배되는 데다 인사권을 사사로이 휘두른다는 비판을 받기 쉽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공서열 시스템은 문제점이 더 크다. 무능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일정 기간을 채우면 승진시켜야 하는 것이 규정이어서 이를 도태시키거나 솎아낼 방법이 없다. 그래서 강희맹은 상소를 통해 인사 법례의 개혁을 요청했다. 인사 책임인 이조판서나 병조판사는 경우에 따라 관행과 틀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시대에도 정말 뛰어난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시험을 보지 않고, 관직 생활을 해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되거나 말단 관직을 전전하던 관리들이 많았다.
강희맹은 인사에서 중요한 기준이 ‘얼마나 오래 근무했느냐’가 아니라 ‘그 자리에 오를 만한 자격이 되는가’ ‘그 임무를 잘 해낼 수 있는 적임자인가’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규정과 원칙에 따라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고 인사 배치와 승진이 진행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와 더불어 뛰어난 인재가 새로 유입될 수 있는 통로 또한 ‘투명하게’ 활성화돼야 한다. 물론 그 과정이 특정인의 이해관계, 호불호에 따라 사사롭게 운용돼서는 안 되겠지만, 그런 부작용을 막겠다고 유연한 인재 발탁 과정 자체를 폐지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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