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권오섭 회장 “CEO는 기다릴줄 알아야… 조바심 내면 사람 잃고 일도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5일 03시 00분


마스크팩 ‘유니콘 기업’ 권오섭 엘앤피코스메틱 회장

마스크팩 하나로 K뷰티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유니콘 기업이 된 엘앤피코스메틱의 권오섭 회장이 11일 서울 강서구 본사 2층의 쇼룸에서 최근 방탄소년단을 모델로 발탁해 선보인 신제품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마스크팩 하나로 K뷰티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유니콘 기업이 된 엘앤피코스메틱의 권오섭 회장이 11일 서울 강서구 본사 2층의 쇼룸에서 최근 방탄소년단을 모델로 발탁해 선보인 신제품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매출 100억 원은 개인이 노력하면 이룰 수 있고, 매출 1000억 원 회사는 직원들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이상은 국가나 사회의 도움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고용 창출과 사회 환원을 경영의 우선적인 목표로 삼는 이유다.” 권오섭 엘앤피코스메틱 회장(60)은 11일 서울 강서구 메디힐빌딩 집무실에서 자신을 ‘화장품쟁이’라고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2009년 설립된 엘앤피코스메틱은 ‘메디힐’이란 마스크팩으로 유명한 화장품 기업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이 회사 마스크팩이 ‘수분 폭탄 팩’으로 불린다. 품질을 높이 평가한 별명이다. 여기에다 매일 한 개씩 마스크팩을 붙인다는 뜻의 ‘1일 1팩’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마케팅에서도 성공했다. 그 덕분에 매출은 2013년 91억 원에서 5년 만인 지난해 3300억 원으로 36배로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 마스크팩 누적 판매량은 15억6000만 장에 달하고 중국뿐만 아니라 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 싱가포르 등 26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방탄소년단을 모델로 내세웠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7∼12월)를 목표로 상장을 준비 중이다. 미국 시장 분석 기관 CB인사이트는 올해 초 기업가치 10억 달러(약 1조1137억 원) 이상인 유니콘 기업에 이 회사의 이름을 올렸다.》
 
―메디힐의 성공이 있기 전까지 2번의 큰 실패가 있었다.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1997년 처음 크게 실패하고 나서 아내가 차를 팔았다. 그 이후로 아내는 대중교통만 이용한다. 조그만 차라도 사자고 하면 이제 ‘뚜벅이’ 생활이 더 편하다고 한다. 두 번 망해 보고 나서 돈 귀한 줄 알게 된 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또 하나는 신뢰다. 보통 사업하는 사람들이 망하면 자기 것부터 건지려고 하는데 그러면 재기할 수 없다. 망할 때마다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운다’는 각오로 빚을 모두 갚았다. 돈은 잃어도 사람을 잃지 않은 게 재기의 비결이라고 여기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첫 번째는 기다릴 줄 아는 자세다. 좋은 사람을 삼고초려해서 데려와 조바심 내면 사람도 잃고 일도 안 된다. 두 번째는 도전정신을 고무시키는 것이다. 항상 직원들에게 실수해도 괜찮으니까 새로운 도전을 하라고 주문한다. 도전하고 실패하는 건 괜찮다. 실수가 두려워 도전을 안 하는 것이 제일 문제라고 생각한다.”

―트렌드 변화가 빠른 화장품 시장에서 사업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나.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모친이 1969년부터 작은 화장품 회사(왕생화학)를 운영했다. 어릴 적부터 옆집은 항상 화장품 공장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화장품이 유리 용기에 담겼는데 그걸 재활용하려고 일일이 씻던 기억이 난다. 몸으로 화장품 사업을 배웠고 모친이 사업하던 방식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경험이 큰 힘이 됐다. 마스크팩에 집중하게 된 것도 그렇게 익힌 사업 감각 덕분이다. 사업 아이디어는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직원들과 항시 소통하며 아이디어를 얻는다. 최신 음악뿐만 아니라 야구 경기에서도 배울 점은 많다.”

그는 최근에 수행 운전사가 차 안에서 틀어준 노래(카더가든의 ‘명동콜링’)가 좋다며 바로 들려줬다.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해 매주 직원들과 격의 없는 소통의 시간을 갖는다. 좋아하는 야구 경기에서도 경영자로서 힌트를 얻는다고 말했다. 아웃될 줄 알면서 죽어라 1루까지 뛰는 주자를 볼 때마다 그는 ‘결과를 예단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한다고 전했다.

―K뷰티는 중국 화장품 시장의 공세를 받고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K뷰티는 중국 시장에서 너무 빠른 성공을 거뒀기에 그 반작용으로 제동이 걸렸다고 생각한다. 화장품은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에 누군가 막는다고 해서 K뷰티 트렌드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도 과거처럼 잘될지는 의문이다. 옥석 가리기가 시작될 것이다. 그동안 한국 화장품 업계에서는 인기 상품과 비슷한 제품을 2, 3개월 만에 뚝딱 만들어 승부를 보려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정도(正道)로 가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현재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스킨푸드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 어떤 화장품 회사를 만들고 싶은가.

“오랜 꿈은 외국계 화장품 브랜드를 인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킨푸드처럼 좋은 브랜드가 있다면 한국 브랜드부터 인수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화장품은 10년 주기로 바뀌어 왔다. 1980년대 방문판매를 시작으로 1990년대 화장품 전문점, 2000년대 로드숍에서 2000년대 후반 헬스앤드뷰티(H&B) 및 온라인 시장으로 유통 채널에 큰 변화가 있었다.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점에 중국인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너무 장사가 잘되는 바람에 많은 로드숍 브랜드가 현실에 안주해 버렸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자 위기가 올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브랜드 인수를 통해 화장품 시장에 새로운 유통 모델을 도입할 구상을 하고 있다.”

―판매 직원까지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어떤 생각 때문인가.

“사업하면서 한 번도 비정규직을 채용해본 적이 없다. 같은 회사에서 누구는 정규직이고, 누구는 비정규직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직원들이 알아줘서인지는 몰라도 4명이던 직원이 지금은 250명까지로 늘었다. 앞으로도 늘릴 수 있을 데까지 계속 직원을 늘리고 싶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 10년 안에 직업의 40%가 사라진다고 한다. 앞으로 고용 창출은 사회적 화두가 될 것 아닌가.”

―‘매출 1등보다 복지 1등 하고 싶다’고 얘기할 정도로 직원 복지를 강조하고 있다.

“직원들이 자녀 학비 걱정하는 것을 우연히 듣고 내 직원들이 학자금 걱정은 하지 않게 하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대학 등록금까지 전액 지원해준다. 본사뿐만 아니라 매장과 관계사 직원 등 총 400여 명의 직원이 그 대상이다. 또 연봉 6000만 원 이하 직원에게는 월세를 매달 35만 원씩 지원해준다. 퇴사한 직원에게는 연말마다 회사 제품을 보내준다. 인연은 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은 틀에 박힌 사고로는 절대 대기업을 이길 수 없다. 트렌드가 빠른 화장품 업계에서는 더 그렇다. 복지가 좋아야 아이디어도 샘솟을 수 있다(웃음).”

본사 지하 2층에는 직장인들이 꿈꿀 법한 공간이 펼쳐져 있다.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가 행복하다’는 권 회장의 철학이 담긴 공간이다. 최고급 시설의 피트니스장을 비롯해 농구대, 탁구대, 골프연습장, 스크린골프장, 사우나, 요가실, 물리치료실, 수면실 등이 갖춰져 있다. 체력단련비도 지원한다. 휴게실 옆에는 직원들이 가족과 사적인 통화를 편히 할 수 있도록 배려한 ‘비밀 전화 부스’까지 마련돼 있다.

―2016년 모교인 고려대에 개인 돈으로 120억 원을 기부한 뒤 지금까지 고려대에 총 154억 원을 기부했다. 적지 않은 돈인데, 기부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무엇인가.

“2012년쯤인가 개인 빚도 다 못 갚았을 때였다. 평소 기부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는지 ‘너는 얼마가 더 있어야 기부를 시작하겠느냐’라는 꿈속 질문 때문에 다음 날 동사무소에 가서 200만 원 기부부터 시작했다. 한국 사회에는 돈 많은 사람도 많고 기업가도 많다. 돈을 버는 사람이 돈을 제대로 써야 존경받는 명문가가 생길 수 있다. 회삿돈으로 생색내는 것 말고 개인 돈을 나눠야 진짜 제대로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기부가 많아야 부의 재분배도 이뤄지고 더 건강한 사회가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 대신 피나는 노력의 결과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인정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상생을 할 수 있다.”

―지난해 아들이 입사하면서 평소 ‘가족회사로 만들지 않겠다’는 원칙을 바꿨다고 들었다.


“대를 이어 운영하는 가족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무슨 꿈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족회사는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아들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대를 이어 화장품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미처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입사해서 8개월간 물류센터에서 박스 나르고 상품기획실 거쳐 지금은 중국 시장 온라인사업부에 있다. 좀 더 지켜보고 회사 경영을 맡길지, 그냥 주주로 살게 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아들의 입사로 가족회사를 만들지 않겠다던 권 회장은 ‘회사에 기여한 직원 자녀 한 명은 특채로 입사할 수 있다’로 원칙을 바꿨다. 실제로 창업부터 권 회장과 오랫동안 일한 일부 임원의 자녀는 이 제도를 통한 특채 입사를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그는 고용인과 피고용인뿐만 아니라 사업의 경쟁자와 파트너 간, 사회 전반에 공정한 게임의 룰이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엘앤피코스메틱#메디힐#권오섭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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