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방에 있을 때, 휴대전화의 연락처를 하나씩 세어보는 습관이 있다. 다들 어떻게 사는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필을 보며 마음으로 안부를 묻는다. 그러다 가끔 멈칫한다. 죽은 사람들이 친구 목록에 남아 있을 때. 처음 친구의 장례식에 간 건 29세 때였다. 마지막 병문안을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는 핑계로 갈까 말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한남대교를 지나는 버스 안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세상이 아름답구나’ 감탄한, 아픈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도 생기 넘치던 나의 눈치 없음을 기억한다.
우리는 ‘82년생 김지영’과 인형 뽑기로 뽑은 도라에몽을 선물로 가져갔다.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도 페미니스트가 된 친구를 보며 웃었다. 하지만 크게 웃진 못했다. 친구가 너무 아파 보였기 때문이다. 동아리에선 밤을 잘 새우던 친구였는데, 20분 정도 이야기하니 힘들어했다. 눕고 싶다고 했다. 친구의 어머니가 고맙다고 웃어주었다. 그날 이후 친구의 어머니를 다시 본 건 장례식장에서였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사회인이 됐다. 처음 돈을 벌어 부모님께 밥을 샀던 어버이날, 침대에서 SNS 목록을 내리다 친구 이름을 발견했다. 그 아래엔 친구 어머니 이름도 나란히 떴다. 맞다, 장례식장에서 전화번호를 받았었지. 프로필 글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잠시뿐이야, 비가 내려 슬펐던 것뿐이고, 눈이 내려 시렸던 것뿐이고, 아무 일도 아니야.’ 세월호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TV에서 수없이 봤음에도, 어버이날에 슬픈 부모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자식 잃은 부모가 맞는 첫 번째 어버이날을 생각했다. 그 친구라면 뭘 선물했을까. 뷰티 블로거였으니까 화장품을 선물했을까. 아버지가 서운해하시겠지. 외식상품권을 드릴까. 한식 뷔페가 좋겠다. 하지만 서울만큼 많지가 않네. 결국 3만4000원짜리 홍삼 제품을 골랐다. SNS 선물하기를 통해 ‘어버이날 축하드린다’는 문구와 함께 홍삼을 보냈다. 세상이 참 좋아졌구나, 승연아.
새벽 1시였는데 순식간에 1이 사라졌다. 40분 같은 4분이 흘렀다. ‘잊지 않아줘서 고맙다’는 어머니의 답장에 잠시 대화를 나눴다. ‘어머니, 다가올 승연이 기일에 친구들이랑 갈게요, 나중에 같이 봬요.’ 보내고 후회했다. 어머님도 나중에 같이 뵙자는 말은 고마울까 잔인할까. 흔쾌히 수락할 수 있는 약속일까. 마음이 무거웠다. 문득 죽은 친구의 블로그가 생각났다. ‘혹시… 승연이 블로그 아세요?’, ‘블로그? 모르는데.’
파워 블로거를 꿈꾸던 그녀의 블로그에는 간간이 ‘엄마’라는 단어가 나왔다. ‘ctrl+F’(단어 검색)를 누르고 ‘엄마’를 검색해 알게 됐다. 승연이 엄마는 그날 밤새 딸의 블로그를 찬찬히 들여다보았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세상은 내 힘으론 어떻게 할 수 없는 슬픔이 닥치고,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어 억울하다고.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얻는 게 뭐냐고. 내가 아는 건 하나밖에 없다. 비슷한 슬픔을 겪은 사람의 마음을 좀 더 헤아리게 되는 것. 언젠가 나도 큰 슬픔을 맞이해야 할 날이 오겠지.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 슬픈 이들 곁에 머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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