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부부 둘째 딸 다호는 올해 여섯 살이다. 낯가림이 심한 편이고, 말이 서툴다. 네 살 위 언니나 우리 집 아이와는 곧잘 어울리지만, 어른들과는 웬만해선 한마디도 섞지 않는다. 행여 어른들이 다호에게 몇 살이냐며 관심을 끌려고 하면 이내 엄마나 아빠 품으로 숨고 만다. 곁에 엄마도 아빠도 없으면 허공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못 들은 척 무시한다. 또 다호 말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해서 매번 언니가 통역해준다.
친구 부부는 곤란했다. 그런 다호를 무작정 어린이집에 보낼 수도 없었고, 주변 사람들의 오지랖도 적잖이 견뎌야 했다. 이를테면 다호의 행동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오지랖이나 발달장애가 의심된다는 오지랖이나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아보라는 오지랖 말이다. 친구 부부도 주변 사람들 등쌀에 못 이겨 상담을 받긴 받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상담은 별 효과가 없었고, 어쩌면 친구 부부에게는 있지도 않은 정상의 문턱만 높게 보였을지 모르겠다. 오죽하면 친구 녀석은 아이들을 데리고 만나는 자리마다 “다호가 좀 유별나다”는 말부터 먼저 하게 됐을까. 그건 사실 더 이상의 오지랖은 사양한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오랜만에 다시 만난 다호는 예전과는 달랐다. 게다가 올해 봄부터는 다호도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다호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변화다. 그 놀라운 변화에 친구 부부는 딱히 한 게 없다고 했다. 다호가 바깥세상에 먼저 말을 건네고 다가가기를 그저 가만히 기다렸다고 한다. 말이 쉽지, 그동안 친구 부부 속이 어땠을지 대충 짐작됐다.
우리 집 아이도 네 살 무렵까지 말을 제대로 할 줄 몰랐다. 한번은 새로 옮긴 어린이집에 등원한 첫날부터 다른 아이 얼굴을 깨무는 바람에 그길로 곧바로 퇴원 당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깨문 것 같다며 용서와 양해를 구했지만 소용없었다. 입학 수속하러 갔을 때만 해도 다정하던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은 우리 집 아이가 다른 아이 얼굴을 깨물자 돌변했다. 전문의의 상담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신신당부했다. 다른 어린이집을 가도 환영받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랬던 우리 집 아이가 제발 말 좀 그만했으면 싶은 단계를 넘어 지금은 엄마 아빠와는 말 섞기 귀찮아하는 사춘기로 접어들었다. 물론 그날 이후 말이 제법 통하면서부터는 아무도 깨물지 않았다. 말하자면 우리 집 아이처럼 다호도 자기만의 속도로 커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럼에도 누군가는 다호가 비정상이라며 친구 부부의 불안을 그때 그 원장선생님처럼 있는 힘껏 부추길 수도 있겠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만일 다호가 비정상이면 세상이 통째로 비정상이다. 만일 다호에게 적절한 의료행위가 필요하다면 세상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참, 다호와 나는 이제 손바닥으로 ‘하이파이브’까지 하는 사이다. 그만큼 다호가 마음을 열어준 셈이고, 나는 세상 부러울 게 없다는 얘기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