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08학번 평양 여대생의 청춘시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8일 03시 00분


2007년 10월 평양 5·1경기장에서 아리랑공연 중인 해군복 차림의 북한 여대생들. 약 3분 분량의 공연을 위해 이들은 봄부터 6개월 내내 달아오른 광장에서 훈련을 했다. 동아일보DB
2007년 10월 평양 5·1경기장에서 아리랑공연 중인 해군복 차림의 북한 여대생들. 약 3분 분량의 공연을 위해 이들은 봄부터 6개월 내내 달아오른 광장에서 훈련을 했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2008년 4월. 평양의 유명 4년제 대학에 입학한 여대생 영희(가명·17)는 부푼 희망을 안고 등굣길에 올랐다. 하지만 꿈은 몇 달 안돼 깨지기 시작했다. 6월 말부터 평양 대학생들은 9월 9일 공화국 창건 60주년 행사에 동원됐다. 2008년 여름은 악몽이었다. 그늘 한 점 없이 뜨겁게 달아오른 김일성광장에서 4m 길이의 무거운 나무 깃대를 들고 두 달 반 동안 하루 종일 행진 연습만 한 것이다.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학생들이 속출했고, 영희도 두 번이나 쓰러져 실려 갔다. 행사를 마치고 열흘간의 방학 뒤 개강을 했지만 진도를 따라가기가 벅찼다. 교수는 시험 때 창문을 내다봤다. 공부를 못했으니 마음껏 커닝하라는 뜻이었다.

2009년 초 조류독감이 돌았다. 모든 학교가 두 달 넘게 휴강을 했다. 4월 2학년이 된 영희와 동급생들은 교도대에 나갔다. 교도대는 대학생들이 2학년 때 6개월간 의무적으로 대공포 부대에서 복무하는 것으로, 필수 이수 코스다. 11월에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한 달 남짓 강의를 듣다 보니 다시 방학이었다.

2010년 1월 방학이었지만 영희는 쉬는 날 없이 대학에 나와 문답식 학습 경연 준비를 했다. 신년사와 당의 정책을 외우는 연례행사다. 2월 개강한 뒤 두 달이 지났을 때쯤 영희는 다시 아리랑공연에 차출됐다.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공연의 3분 분량을 위해 그해 여름 내내 뜨거운 광장을 뛰어다녀야 했다. 10월부턴 매일 미니스커트를 입고 공연에 투입됐다. 11월 잠깐의 방학 뒤 한 달 남짓의 공부가 시작됐다. 90분짜리 강의가 오전 3개, 오후 3개, 저녁 1개씩 이어졌다. 한 학기 분량이 열흘 만에 끝났다. 커닝을 해도 시험 점수가 나쁘면 교수에게 불려갔다. “보고서 써야 하는데 A4 용지가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면 30∼50달러의 돈을 내밀어야 했다. 그래야만 낙제를 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011년 2월 개강하고 두 달 뒤인 4월 말 농촌지원을 한 달 나갔다. 5월 말에 돌아오니 이번에는 ‘수도 10만 주택 건설 총동원령’이 떨어졌다. 평양의 22개 대학 전체가 문을 닫았다. 대학생들은 능라도유원지, 창전거리, 역포구역의 10만 주택 건설장에 동원됐다. 당초 1년 예정이었지만 동원령은 2013년 2월까지 지속됐다. 무려 1년 9개월을 건설 노동자로 일한 셈이다. 살림집 건설에 국가 지원은 일절 없었다. 한 개 학부에 대략 10층짜리 아파트 한 동을 짓도록 과제를 주고 알아서 완공하라는 식이었다. 인력은 대학생들로 충원됐지만 자재를 살 돈이 없었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 일은 ‘세외부담’이라며 금지했다. 대학은 꼼수를 썼다. 100달러를 내면 열흘 휴식을 줬다. 지친 학생들이 앞다퉈 돈을 냈다. 심지어 10만 달러를 내면 노동당에 입당까지 시켜주었다. 북한에서 대학생의 노동당 입당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자재 확보를 위해 당원증을 판 것이다. 권력과 돈을 가진 집의 자제들은 노동당원이 됐고, 졸업할 땐 당원이란 명목으로 군에도 안 가고 제일 좋은 부서에 배치됐다. 부족한 건설 인력은 돈을 주고 군인을 수십 명씩 고용했다. 이런 와중에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자 영희는 겨울 애도행사에 동원됐다.

2013년 3월 영희는 비로소 대학에 돌아왔다. 이미 1년 전에 졸업했어야 했지만 학제에도 없는 5학년이 돼 2학년 교재로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에도 이런저런 명목으로 동원되며 1년을 더 공부하고 6개월 논문기간을 끝낸 뒤에야 영희는 2014년 12월 졸업할 수 있었다. 6년 반이나 학교를 다녔지만 뭘 배웠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동기들은 스스로를 “우린 저주받은 세대”라고 불렀다.

졸업은 끝이 아니었다. 북한에서 대학 졸업생들은 의무는 아니지만, 90%가 입당을 위해 군대를 간다. 남학생은 일반 병사로 가고, 여학생은 기무, 재정 참모 등 군관이 된다. 군 복무 기간은 4∼5년이다.

요즘 평양 대졸 여성들의 평균 결혼연령은 32∼33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영희는 2015년 3월 입대해 4년 만에 입당하고 제대했다. 08학번 영희는 만 28세가 된 2019년 4월에야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제부터 그는 결혼할 남자를 찾아야 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평양#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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