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
올해 말까지 산 아래 새집으로 이주시켜, 전국서 빈곤 발생률 가장 높은 오지
공산당 빈곤 퇴치 정책 성패 가늠자… 변방 소수민족에 시진핑사상 교육강화
중국 서남부 윈난(雲南)성 바오산(保山)공항에서 27km밖에 안 되는 거리지만 산을 하나 넘어야 했다. 비포장도로로 덜컹거리며 2시간 반 넘게 달려서야 해발 700여 m에 있는 누장(怒江) 리쑤족 자치주 정부 행정센터에 도착했다.
서쪽으로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북쪽으로 티베트와 연결되는 인구 54만7000명의 작은 농촌 도시. 그중 14만2900명이 국가에 등록된 빈곤층이다. 1년 소득이 4000위안(약 67만 원)을 넘지 못한다는 뜻이다. 빈곤 발생률이 32.5%에 달하는 누장은 중국에서 가장 못사는 곳이다. 12일 만난 나윈더 누장 자치주 서기는 “중국 전역에서 빈곤이 가장 심각한 지역”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고속도로나 철도로도 연결되지 않는 이곳 누장. 중심가 곳곳에선 도로 다리 등 기초 인프라 시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중장비의 쇳소리와 매캐한 공사 먼지가 귀와 코를 자극했다. 자치주 정부 관계자가 “주 전체가 공사장 같지요”라며 말을 걸어 왔다. 곳곳에 붙은 ‘빈곤 퇴치’ 문구 가운데 “누장의 조건이 부족하지 정신과 투지가 부족한 게 아니다”라는 붉은색 표어가 눈에 띄었다.
이곳은 중국 중앙 정부가 빈곤 퇴치를 위한 새로운 실험을 진행하는 최전선이다. 중국 당국은 인구 50만 명인 누장의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 2017∼2020년 4년간 147억 위안(약 2조50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입고 먹는 것 2가지를 걱정하지 않게 하고 의무교육, 기본 의료, 주거 안전 등 3가지를 보장한다는 ‘량부처우싼바오장(兩不愁三保障)’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중점을 두고 진행 중인 사업은 고지대 산속 주민들을 저지대 주택가로 이주시켜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내부의 어려움을 드러내기 꺼리는 중국이 보기 드문 빈민층 이동 현장을 공개한 것은 농촌 빈곤 해결이 얼마나 절박한 과제인지 보여준다.
○ 평생 산 산촌 떠나는 소수민족
13일 오프로드용 4륜 구동 차량에 올라탔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지가 일어나는 가파르고 좁은 흙길을 굽이굽이 돌았다. 옆으로는 눈 덮인 해발 4000m가 넘는 비뤄 설산이 웅장한 모습으로 반겼다. 그것도 잠시. 발밑에 도사린 아찔한 깊이의 협곡은 두려움을 일으켰다.
그렇게 1시간 반을 달려 해발 2000m의 솽미디(雙米地)촌 간허(干河) 마을에 도착했다. 37가구 140명이 사는 작은 마을. 현지 관계자는 32가구 125명이 정부에 등록된 빈곤층이라고 말했다. 나무와 흙으로 올린 다소 위태로워 보이는 집들이 모여 있었다. 주민들은 대충 바른 듯한 시멘트 바닥의 집 안에서 생활했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모습에 과거로 시간 이동을 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난해 3만 명이 산 아래로 이주했고 올해 말까지 7만 명이 이주해 10만 명 이상의 산촌 주민들을 새로운 거주지 21곳으로 이주시킬 계획입니다.” 동행한 자치주 정부 관계자가 강조했다.
아내, 다섯 살 손녀와 같이 사는 주민 진수화 씨(47)도 산속 마을을 떠날 예정이다. 농민공으로 외지에 간 아들이 남기고 간 손녀를 5km 떨어진 작은 유치원에 보낸다. 걸어서 2시간 걸리는 곳이다.
“집도 안 좋고 교통이 불편하고 병원, 학교가 없어요. 농사로는 몇천 위안 못 벌어요. 세 식구가 배를 채우지 못할 정도로 먹을 게 부족해요.”
―내려가서 뭘 할 생각이세요?(기자)
“노동일 해야죠.”
―오래 산 고향인데 떠나는 게 아쉽지는 않으세요?
“여기선 생활이 안 돼요. 떠나는 수밖에 없어요.”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한 이주는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평생 살아온 고향 땅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바로 농민 아닌가. 척박하지만 삶을 일구며 소수민족 리쑤족의 문화와 풍습을 간직해온 그들이 고향을 떠나기 두려워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연중에 아쉬움을 드러낸 주민도 있었다. 허치누 씨(70·여)에게 ‘평생 여기 살았는데 걱정 없으세요?’라고 묻자 “노인은 아이들을 위해 내려가는 게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치주 정부도 “평생 산속 생활에 적응해 행복하다고 여겨 온 주민들이 이주를 원하지 않기도 한다”고 밝혔다. 정의 누장 자치주 선전부 부장은 “새 주거지와 변화된 생활상을 보여주며 설득하면 생각이 바뀐다”고 말했다.
○ 새집에서 새 목표 세우는 주민들
다시 4륜 구동차로 1시간여 달려 해발 800m에 있는 새로운 주거지 중 한 곳인 다룽탕에 도착했다. 지난해 10월 입주를 시작한 이 아파트 단지에는 산속에서 내려온 빈곤층 163가구 626명이 산다. 자치주 정부 관계자는 “노동 능력이 있는 주민 386명 중 225명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았다”고 말했다.
리쑤족 미춘메이 씨(22·여)는 생활고 때문에 멀리 중국 동부 장쑤성으로 떠나 일하다가 새 주거지에 가족이 입주하면서 고향에 돌아왔다. 그는 아파트 단지 내 벌꿀 수공예 작업장에 일자리를 얻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어요. 외지로 떠난 사람들에게 고향에 대한 기억은 겨울만 있었죠. 춘제(중국의 설) 때만 돌아왔으니까….”
그는 이내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80m² 방 3개짜리 집이에요. 비싼 집을 무료로 받고 나니 목표가 생겼어요. 열심히 돈을 모아 작은 상점을 열고 싶어요.”
하지만 미 씨의 할머니는 산속 집에 산다. “거기 사는 게 이미 생활이 익숙하시고 여기는 아직 적응하지 못하셨어요.” 이주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누장은 현지 특산물을 가공해 술과 차를 생산하는 ‘빈곤퇴치 기지’를 설립해 빈곤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빈곤층 농민들이 출자해 세운 양봉장, 양계장 등 합작회사도 확대하고 있다.
○ 시진핑 정책 성패의 가늠자, 누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여러 차례 누장 빈곤 해결을 직접 지시했다. 그러자 지방 간부들이 앞다퉈 빈곤 퇴치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나 서기는 “1개월에 최소 하루는 간부들이 빈곤층 농민 집에서 같이 보내며 그들의 어려움과 생각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최고 지도자부터 지방 간부까지 발 벗고 누장에 뛰어든 이유가 뭘까. 중국의 내정 목표 1순위는 농촌 빈곤 퇴치다. 특히 누장의 빈곤 문제 해결은 시 주석이 강조해온 ‘빈곤퇴치 돌파전’의 성패와 연결된다. 중국은 2020년 말까지 이 돌파전을 마무리해 농촌 빈곤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빈곤퇴치 돌파전의 성공은 중국 공산당의 핵심 목표인 2021년 전면적인 샤오캉(小康)사회(의식주 문제가 해결된 다소 풍족한 사회) 건설로 연결된다. 중국은 공산당 창당 100년이 되는 2021년 전면적 샤오캉사회 건설을 첫 번째 100년의 분투 목표로, 신(新)중국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을 두 번째 100년의 분투 목표로 삼아 중국몽을 이루는 ‘2개의 100년 분투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14일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누장 자치주의 ‘신시대농민강습소’였다. 취직 기술은 물론이고 생활 방식까지 모든 것을 교육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빈곤 퇴치 사업이 깊은 산속에 흩어져 생활하던 소수민족 농민들을 정부 관리 범위로 끌어들여 사회주의 사상 교육을 강화하려는 것이라는 의도도 엿볼 수 있었다. 상하이 명문 푸단대 박사 출신의 쑤이성 강사단 단장은 “강습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쑤족이 많이 믿는 기독교 교회에서도 공산당의 사상을 강의한다. 그는 “연인원 40만 명이 강습을 받았으니 인구 54만 명 중 74% 이상이 교육을 받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방 인민의 마음이 당을 향하고 영수의 말을 마음에 기억하게(邊疆人民心向黨領袖話兒記心上)’라는 슬로건이 그 목적을 잘 보여준다.
나 서기는 취재진에게 “내년 말 누장 빈곤 퇴치를 끝내고 전면적인 샤오캉사회를 건설할 때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다시 만날 누장의 산촌 주민들이 진정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때 비로소 중국이 밝은 미래의 길로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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