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하거나 사업 규모를 줄이는 중소 제조업체가 늘면서 수도권 산업단지에는 중고기계 매물이 쌓여가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경기 시흥 안산 군포 일대 산업단지를 점검한 결과, 일감이 끊긴 중소업체들이 공장을 매각하거나 임대하면서 처분하는 기계가 예년보다 2배가량 늘었지만 이를 사가겠다는 기업은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국내에서 소화하지 못한 중고기계 매물은 결국 해외로 팔려가 최근 2년 새 중고기계 수출액은 23% 급증했다.
이는 총체적 난국에 직면한 한국 제조업의 위기가 밑바닥 중소기업들에 더 큰 충격을 준 결과다. 자동차, 반도체 부진에 국내 제조업 가동률은 2년 만에 최대 폭으로 하락했고 3월 한 달에만 제조업 일자리는 10만8000개 줄어 12개월 연속 감소세다. 더 심각한 건 우리 제조업이 세계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역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한국 제조업은 통신기기·의약 등 글로벌 성장업종에선 점유율이 하락한 반면 쇠퇴업종에선 오히려 상승했다. 제조업 주력업종의 세대교체와 사업구조 재편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견인해온 제조업이 흔들리면서 바닥경기는 더 심각한 수준이다. 중소 제조업 생산지수는 지난해 2.5% 줄어 9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반면 중소 제조원가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년 새 8.3%포인트 늘어 중소기업들의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국내외 경기침체 상황을 감안하면 올해 중소업체들의 사정은 더 나빠질 것으로 우려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을 마련한다고 해놓고선 아직까지 구체적인 이행 로드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 일본 중국 독일 등 경쟁국은 제조업을 국가경제의 근간으로 보고 제조업 고도화, 혁신화 전략에 팔을 걷어붙인 지 오래다. 미래형 자동차, 바이오헬스, 드론 등 신산업도 결국 제조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제조업 혁신 타이밍을 놓치면 향후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도 한국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5년 안팎의 기간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국내 제조업의 재도약과 한국 경제의 질적 성장 여부가 달려 있다. 정부는 더 늦지 않게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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