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을 앞둔 성주간 월요일. 길이 128m, 폭 43m의 웅장함을 자랑했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불이 났다. 곧이어 높이 91m의 첨탑이 불길에 못 이겨 무너져 내렸다.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성당은 1163년부터 짓기 시작했다. 몇 번에 걸친 완공과 개·보수를 거듭하며 약 150년 동안 지어진 중세 고딕 시대 걸작이다. 건축가들이 손꼽는 프랑스 대표 고딕 랜드마크 건축은 파리 남쪽으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샤르트르 대성당과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그중에서도 노트르담 대성당은 수도 파리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고, 파리 구도심인 시테섬에 있어 상징성이 높다.
시테섬은 센강의 중심에 있는 작은 섬으로 파리의 지리적 중심이다. 대성당이 있는 위치는 노트르담이 있기 전에도 구 교회 건물이 있었고, 로마 시대에는 신전이 있었고, 그 전에는 토속 신앙 건물이 있었다. 노트르담 구 교회 건물은 교육 기능도 겸했다. 12세기 대석학 피에르 아벨라르 밑에서 수학하고자 사람들이 파리로 몰렸다. 그의 강의실에는 많을 때는 1000명 이상의 수강생이 있었다. 교육으로 도시는 성장했고, 파리는 점차 유럽의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로 부상했다.
대성당에서 남쪽으로 센강을 건너면 나오는 파리 ‘라틴 쿼터’는 학생들이 많아지며 팽창한 일종의 ‘학생 지구’인데, 이곳이 파리 중세 대학의 시발점이 됐다.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 대학에 처음 왔을 때 노트르담 신 건물인 대성당은 준공한 지 얼마 안 된 백색 초고층 건축으로 유럽 대륙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였다. 대성당과 대학은 하나의 유기체적 건축군을 이루며 중세시대 아퀴나스 같은 세기의 천재를 파리로 끌었다.
그렇다고 대성당의 시간이 늘 밝지만은 않았다. 시민혁명의 영향으로 왕들의 조각상이 음각돼 있는 대성당은 19세기에 헐릴 위기에 놓였는데 빅토르 위고와 같은 지성인들의 반대로 겨우 철거 위기를 모면했다. 이후 구도심 고딕 건축 재생 선봉장인 건축가 외젠 비올레르뒤크의 노력으로 부활했고, 첨탑은 그때 만들어졌다.
대성당은 하늘에서 보면, 십자가 구성을 하고 있다. 십자가의 긴 축 방향을 네이브(종축 방향)라고 하고, 짧은 축 방향을 트랜셉트(횡축 방향)라고 한다. 네이브는 종축 방향의 중앙 복도이고, 그 양옆으로 두 겹의 부속 복도가 있다. 네이브와 트랜셉트가 교차하는 지점에 지붕 위로 뾰족한 첨탑이 있다.
대성당 방문자는 주 출입구를 들어와 부속 복도에서 네이브로 이동한다. 이동 중에 천장이 점증적으로 높아지며, 이에 비례해 빛의 양이 많아진다. 높이와 빛의 점증적 증가는 트랜셉트에서 정점을 찍는다. 십자가의 양팔에 해당하는 트랜셉트 양 끝단 원형의 고측창인 장미창에서 형형색색 빛이 쏟아지며, 이전과는 다른 광량으로 빛이 어둠을 밀어낸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장미창은 샤르트르 대성당의 장미창과 더불어 유럽 대륙에서 1, 2위를 다투는 국보급 장미창이다. 장미창 중앙에 있는 중심 원에 예수님이 있고, 이를 구심점으로 방사형으로 8개의 원이 파생한다. 장미창은 8의 배수로 증가하며, 도합 88개의 원을 만든다. 성경에서 7은 완전수로 ‘월화수목금토일’ 혹은 ‘도레미파솔라시’처럼 인간의 시간과 인간의 소리를 규정하지만 8은 영원의 시간과 영원의 소리를 상징한다.
대성당 장미창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시간과 소리의 영원한 주인임을 본다. 아퀴나스는 대성당의 장미창을 보고서는 중세 건축과 음악을 3단어로 압축했다. 이는 라틴어로 다름 아닌 완전한 하나, 소리의 조화, 영원한 빛남이었다.
비올레르뒤크는 어릴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노트르담 대성당을 처음 방문했다. 그는 트랜셉트 북측 장미창을 보며 소리 질렀다. “엄마, 저기 봐, 장미창이 노래를 불러!” 그는 장미창에서 아퀴나스가 본 것을 보았다. 이 체험이 씨앗이 되어 그는 훗날 고딕 건축 부활의 전도사가 됐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유럽의 구심점이자, 프랑스의 구심점이자, 파리의 구심점이다. 혁명 중에는 철거를 모면했고, 전쟁 중에는 폭격을 이겨냈다. 이번 화재도 거뜬히 이겨내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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