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철희]트럼프 체스판 위 한반도와 중동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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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이란엔 강공-北엔 ‘휴장’… 김정은 빠른 결단만이 고통 던다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흔히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이 미국의 대외정책을 좌지우지한다고 하면 음모론이라 치부하곤 하지만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와 스티븐 월트는 공저 ‘이스라엘 로비’를 통해 2003년 이라크전쟁도 이스라엘의 로비가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결론짓는다. “이스라엘과 친(親)이스라엘 그룹, 특히 신보수주의자(네오콘)가 이라크 침공 결정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증거는 많다. 로비의 영향이 없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광범위한 이스라엘 로비망은 한반도라고 예외가 아니다. 북한이 이란·시리아와 맺어온 ‘핵·미사일 커넥션’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1990년대 초 북한의 미사일 판매 중단을 조건으로 10억 달러 규모의 대북투자를 제안했고 협상은 타결 직전까지 갔지만 미국이 개입하면서 중단됐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이란 핵개발 뒤편의 ‘북한 그림자’를 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스라엘 로비는 한층 거리낌 없고 노골적이다. 한술 더 뜨는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다. 트럼프는 최근 골란고원의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하면서 대놓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총선 선거전을 거들기도 했다. 머지않아 모습을 드러낼 트럼프의 신(新)중동평화구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2국가 해법’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내용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온다.

그런가 하면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주적(主敵) 이란에는 가차 없는 강공 드라이브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해 제재를 강화해온 트럼프는 최근 이란의 원유 수출 길을 전면 봉쇄했다. 앞서 2주 전엔 이란의 최정예부대 혁명수비대를 ‘외국 테러조직’으로 지정함으로써 이란 체제의 붕괴 의도까지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전임 행정부의 ‘정책 뒤집기’를 넘어 후임 행정부가 아예 되돌릴 수 없게 만들려는 ‘대못 박기’ 수준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물론 그 바탕엔 ‘셰일오일 혁명’ 덕분에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위상 변화가 있다. 거기에 판을 세게 흔들고 그 혼란 속에 이득을 챙기는 트럼프의 승부 본능이 더해지면서 화약고 중동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이처럼 중동 문제에 집중하면서 트럼프는 북한에는 “서두를 것 없다”며 여유를 부리고 있다. 그에겐 중동도, 한반도도 같은 게임판 위에 있다. 한쪽은 조이고 다른 쪽은 늦추며 쥐락펴락하다 보면 대선이 한창일 내년 중반쯤엔 어느 쪽이든 성과로 나타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리라. 특히 이란은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만 해도 외교적 승리로 선전할 기세다.

정작 다급해진 것은 김정은이다. 내부적으로 협상라인을 교체하고 미국에도 카운터파트를 바꾸라는 억지소리를 하는가 하면, 지금 시점에 서두를 이유가 없는 러시아 방문 길에도 나섰다. 외곽에서 변죽을 울리며 미국의 변심을 노리겠다는 심산이겠지만 트럼프가 동요할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은 마치 북한에 ‘한 시즌 휴장’ 팻말이라도 내건 듯한 분위기다.

문제는 김정은의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그는 최근 시정연설에서 하노이 결렬에 대한 실망과 자책을 감추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무슨 제재 해제 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거듭 다짐하듯 말했다. “방금 말했지만 제재 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재 해제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대목을 당장 김정은이 뭔가 방향 전환을 하려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제재 해제 요구를 접는다면 그 대신 더 무리한 요구를 내세울 게 뻔하다. 하지만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자력갱생’이 주민들을 끝없는 고통으로 내모는 짓임을 그 역시 모를 리 없다. 그에게 남은 것은 과감한 결단뿐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트럼프#이스라엘 로비#북한 비핵화#자력갱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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