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줘, 여보.” 아내가 가출했다. 그것도 억만장자의 24세 연하 아내다. 대만 국민당 총통 후보 경선에 출마한 궈타이밍(郭臺銘·69) 폭스콘 회장이 최근 “경선 참여를 선언한 뒤 아내가 이제 가족의 사생활은 없어질 것이라고 안타까워하며 집을 나가버렸다”고 밝혔다. 성공한 사업가로 거침없는 화법까지 닮아 ‘대만의 트럼프’라 불리는 그는 “나랏일을 하는 데 여자가 나서는 법이 아니다”라고 대권 출마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미 여성 총통을 배출한 대만인데 두고두고 여성 표를 날릴지도 모르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도 당초 대선 출마에 반대했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대선 출마 결심을 털어놓자 아내가 ‘지금도 잘 살고 있는데 왜 (대선 출마를) 하려고 하느냐’고 했다”고 말했다. 우려대로 대선 과정에서 멜라니아 여사는 모델 활동 당시 반누드 사진이 다시 공개되는 등 곤욕을 치러야 했다. 남편 못지않게 활발히 사회활동을 했던 미셸 오바마 여사도 마찬가지였다. 2006년 버락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이 대선 출마를 결심한 뒤 처남 부부에게 아내를 설득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를 들은 미셸 여사의 첫 반응. “버락이 주말마다 집에 올 수 있고 일요일은 휴식을 취할 수 있냐”였다(피터 슬레빈의 ‘미셸 오바마’). 정치인의 아내로, 워킹맘으로 매일 전투를 치르던 미셸 여사는 두 딸과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바뀔 것을 두려워했다.
▷정치를 ‘대업’으로 보고 가족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던 과거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도 가장이 가족을 위해 정치 욕심을 접었다는 소식이 종종 들린다. 네거티브 폭로가 난무하는 선거를 치르다 보면 가족의 평온한 일상은 곧잘 산산조각이 난다. 지난 총선에 입성한 한 의원의 지인은 “그 부인으로부터 왜 말리지 않았냐는 원망을 오래 들었다”고 했다.
▷가족의 신상까지 탈탈 털리는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고위공직자는 말할 것도 없다. 현 정부 출범 초기 장관 후보자로 거론됐던 한 인사는 “청문회 가는 장관은 싫다. 청와대 수석이면 모를까” 하며 손사래를 쳤다. 대통령수석비서관은 차관급이다. 서로 고사하는 바람에 28번째 후보자에게 돌아간 현 정부 장관 자리도 있었다. 최근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장관 인사검증을 제안하면 대개 ‘나는 장관 말고 차관 하겠다’고 한다”며 ‘구인난’을 호소했다. 이대로라면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가 가장 넘기 힘든 허들은 ‘가족’이 될 것 같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