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저승사자’ 로버트 아인혼 前 美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보
‘굿 이너프 딜’식 단계적 접근에…美, ‘위장에 불과한 北 조치’에 회의적
북핵 역량에 캡 씌워 진전 막고… 종전선언 등 비경제적 대가 제공
디딤돌 단계로 ‘잠정 합의’ 필요
나는 늘 현실적 접근 추구해와… 저승사자 이미지, 왜곡된 점 있어
요즘 미국 워싱턴의 최대 이슈 중 하나는 ‘제재’다. 북한과 이란을 겨냥한 제재가 도마에 올랐다.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후 대북제재 이행을 촉구하는 강경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란의 경우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더 이상의 제재 적용 예외는 없다”며 이란의 원유 수출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방침을 확실히 밝힌 상태이다. 로버트 아인혼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런 흐름에 대해 “제재가 해당 국가의 경제에 타격을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제 협상이나 정책 방향의 변화로 이어지느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아인혼은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보를 지내면서 과거 북한과 이란의 제재를 총괄했다. 한때 ‘대북 저승사자’로 불렸던 그를 24일(현지 시간) 워싱턴 브루킹스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90분간의 인터뷰에서 그는 제재 일변도의 대북정책이 갖는 한계도 동시에 지적하며 완전한 비핵화로 가기 위한 디딤돌로써 ‘잠정 합의(interim agreement)’를 제안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북-러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대북제재 완화와 경제 지원을 요구할 것으로 보나.
“김 위원장은 러시아에 식량 지원과 파견 중인 북한 노동자 등에 대한 대북제재 예외 적용을 요구할 것이다.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을 통해 북-미 회담의 레버리지를 키우면서, 북한이 중국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보내려는 목적도 있어 보인다. 이를 통해 합법적인 국가의 리더로 인정받으려 하고 있다.” ―북-중-러 3각 연대가 강화될 것이라고 보나.
“북-러 정상회담이 중국을 포함한 3각 협력으로 강화될지는 잘 모르겠다. 북한은 수십 년간 ‘대국(big power)’들을 상대하면서 각 나라로부터 개별적인 이익을 얻어내려고 시도했다. 제재 약화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중국 러시아 모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할 것이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마음대로 대북제재를 완화할 수 없지 않나.
“물론 두 나라는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veto)을 갖고 있다. 앞으로 더 가혹한 추가 제재를 부과하려 할 때 저지할 수는 있겠지만 현재의 제재를 걷어내는 것은 어렵다. 자국 기업이 연루된 원유나 석탄 불법 환적의 감시를 엄격하게 이행하지 않는 방식이 될 수는 있겠다. 푸틴 대통령의 대북 레버리지는 제한적이다. 지난해 북-러 교역 규모는 3400만 달러에 그쳤다, 이건 ‘새 발의 피(drop in the bucket)’이다. 더구나 러시아 경제 자체가 어렵다. 러시아가 북한에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것이다.”
―크렘린궁이 6자회담을 다시 언급했는데 향후 비핵화 협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협상에 관여시키는 것은 나쁘지 않다. (비핵화 약속과 결의 등) 이행을 위해서도 많은 국가의 협력과 지지는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그런 협력은 북-미 양자의 결정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한다.”
―북한은 미국에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며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협상 대표에서 교체하라고 요구했는데….
“직접 미국을 겨냥했다기보다 국내적 요인이 크다고 본다. 폼페이오 장관이 김정은을 독재자(tyrant)라고 한 것은 북한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겠지. 그런 요구로 폼페이오 장관을 교체할 수 없다는 것은 북한도 잘 알고 있다.”
―한국 정부의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은 협상 교착 국면을 뚫어낼 수 있을까.
“북-미 양쪽 모두 비현실적인 목표를 갖고 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에 핵무기를 모두 포기하라는 전략적 결정을 요구했지만 내가 볼 때는 북한이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런(단계적) 제안을 한 것으로 이해한다. 신뢰 구축을 위한 작은 단계적 조치부터 시작하고, 협상의 모멘텀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작은 단계적 조치에 매우 회의적이다. 위장(charade)에 불과한 북한의 조치에 왜 합의해야 하느냐는 생각이다.”
―대북제재의 상징이자 강경파로 평가받아온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나는 ‘잠정 합의(interim agreement)’를 제안한다. 최종적이지는 않지만 다음 단계의 진전을 위한 디딤돌 단계가 필요하다. 잠정 합의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을 영구적으로 만들고, 영변을 포함해 북한 전역의 핵물질 생산과 관련된 시설을 모두 정밀하게 검증한다는 두 가지 핵심 요소를 충족해야 한다. 또 타임 프레임을 설정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북한은 영변 이외의 특정 시설들은 빼놓으려 할 것이다. 그래서 미국과 한국, 국제원자력기구(IAEA) 같은 국제적 전문기관들이 함께 협력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소한 북한의 핵 역량에 캡을 씌워서 더 이상의 진전을 막는 것이다. 미사일만 추가 테스트를 하지 못한다면 정확도와 안전성을 더 확보하지 못하는 제한을 가할 수 있다. 이것으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룰 수 있느냐고? 아니다. 하지만 완전한 비핵화는 현재 가능하지 않다. 협상이라도 계속 굴러가도록 해야 한다.”
―잠정 합의의 대가는 무엇인가.
“잠정 합의 단계에서는 비경제적 대가를 제공한다. 북-미 연락사무소와 종전선언, 인도적 식량 지원, 그리고 일부 약한 수준의 제재 면제를 해줄 수 있다고 본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도 제안할 수 있다. 또 미국 독자 제재의 일부 선별적인 이행 중단 역시 제안할 수 있다. 북한의 수출을 풀어주지는 않지만 수입 제한 완화는 가능하다고 본다. 북한의 원유 수입량을 늘려주는 것은 어떤가. 이것은 가역적이고, 북한에 경화를 제공하지 않으며, 수입을 통해 북한의 외환보유액을 계속 줄어들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 등에서 나쁘지 않다. 우리의 향후 대북 레버리지를 약화시키지도 않는다.”
―하지만 미국은 ‘최대 압박’에는 동맹도 예외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지 않았나.
“최대의 압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더 강하게 옥죄고, 옥죄고, 또 옥죄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압박하면 조만간 정적들이 항복하고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들은 제재에 맞설 자체 자원을 확보하고 있고, 회복 탄력성이 있다. 민족적 자존심의 문제도 걸려 있다. 제재로 이들을 옥죄기가 매우 어려운 이유다. 중요한 것은 경제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실제 정책 변화로 이어지느냐 하는 것이다. 하노이에서 확인된 경제적 절박함이 결정적인 양보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란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제재는 효과가 없다는 말인가.
“트럼프 행정부가 좀 더 현실적인 접근을 한다면 제재는 보다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란과의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가 체결되던 당시를 돌아보면 미국과 유엔, 유럽연합(EU)이 이란에 부과한 제재는 효과적인 협상의 모멘텀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란이 수용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한다면 이란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이는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생존이 걸려 있는 문제에서 아직 준비가 안 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나서는 것은 국가적 자살(national suicide)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당신의 생각은 공직을 내려놓은 이후 달라진 것이냐”고 물었다. 그가 1시간 반 동안 풀어놓은 설명과 논리는 ‘저승사자’라는 무겁고 완고한 이미지와는 결이 많이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접근을 추구해왔다는 점에서 나는 늘 같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과거 비확산, 군축과 관련한 각종 협상의 책임자로는 강한 입장을 유지했지만 그렇다고 강경파는 아니다. 그런 나의 이미지는 다소 왜곡되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며 웃었다. 부드럽고 유연한 미소였다.
▼로버트 아인혼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 뉴욕주 록빌센터 출신으로 1969년 코넬대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2년 리처드 닉슨 행정부부터 2001년까지 29년간 비핵화와 제재 관련 업무를 맡았던 이 분야의 대표적 전문가다.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함께 방북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두 차례 면담했다.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보(차관보) 등을 지내며 대북자금 제재를 주도했고, 2010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對)이란·북한제재조정관을 맡아 ‘대북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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