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닿는 집’, 마천루(摩天樓)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상징이다. 전 세계 관광객이 빽빽하게 늘어선 초고층빌딩이 이루는 스카이라인을 보러 뉴욕을 찾는다. 최근 이 스카이라인에 변화가 생겼다. 좁은 땅에 젓가락 모양으로 기다랗게 지은 초고층빌딩, 일명 ‘슬렌더(slender) 마천루’가 육중한 빌딩 틈새에서 하늘로 치솟고 있는 것.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지역인 ‘억만장자의 거리’에 현재 건설 중인 높이 435.2m짜리 빌딩 ‘111 웨스트 57번가’는 바닥 면적과 높이의 비율이 1 대 24로 세계에서 가장 날씬한 건물이다.
▷슬렌더 마천루가 늘어난 것은 높은 곳의 탁 트인 전망을 소유하려는 부자들의 바람과 큰 수익을 원하는 부동산 개발업자의 욕망이 만난 결과물이다. 뉴욕에서 4번째로 높은(425.8m) 건물인 ‘432 파크애비뉴’의 95층은 지난해 12월 3.3m²당 3억1190만 원에 팔렸다. 이는 비슷한 시기 같은 건물의 낮은 층 시세(3.3m²당 1억7310만 원)의 두 배에 가깝다. 호리호리한 초고층 빌딩이 늘어나면서 오랜 기간 뉴욕 마천루의 대명사였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381m)은 뉴욕 빌딩 순위(높이 기준)가 6위까지 떨어졌다.
▷토지나 건물 위 하늘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인 공중권(Air Right)을 사고팔 수 있는 점도 초고층빌딩이 늘어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좁은 땅에 높은 건물을 지으려고 주변 낡은 건물의 공중권을 사들였다. 이런 움직임은 뉴욕시가 재정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 지난해 시는 시영아파트의 공중권을 10억 달러에 매각해서 그 돈을 낡은 시영아파트의 난방설비를 보수하는 데 필요한 320억 달러 규모의 예산에 보태기로 했다. 건물 유지·관리를 위해 비워둔 층의 높이는 전체 건물 높이에서 빼주는 시 정책도 높은 건물을 유도했다.
▷서울시의회가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 재정비를 앞두고 주거용 아파트의 높이를 35층으로 제한해온 ‘35층 룰’에 대한 여론 수렴에 나섰다. 부동산업계는 35층 룰이 서울에 비슷한 모양의 아파트가 잔뜩 들어서게 만든 원인이라며 규제를 유연하게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층고 규제 완화가 어렵게 진정시킨 부동산 가격을 들썩이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날씬하게 지어도 초고층 아파트가 우후죽순 생기면 한강이나 산을 바라볼 권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반대도 있다. 뉴욕의 슬렌더 마천루가 바람직한 미래 도시상인지는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설계하는 데 참고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