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협치 짓밟은 신속처리안건 지정… 법안 논의라도 제대로 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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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이 29, 30일 심야에 강행 처리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범여(汎與) 블록으로 손을 잡았고 자유한국당은 배제된 상태였다. 패스트트랙 강행 처리 후 민주당은 국회 정상화를 위해 한국당과의 협상 의지를 내비쳤지만 한국당은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보이콧하기로 했다. 육탄전에 이어 여야가 서로 얽힌 무더기 고소·고발전으로 번진 상황에서 정국은 급랭하고 있다.

여야는 국회 파행의 책임 공방을 벌일 자격이 없다. 민주당은 패스트트랙 지정을 강행함으로써 국정을 이끌어가야 할 집권여당으로서의 협치(協治)정신을 묵살했다. 청와대 정무라인은 한국당 등 대야 접촉에 담을 쌓았고,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소셜미디어에 야당을 자극하는 글을 올려 여당 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한국당도 사개·정개특위의 사전 논의 과정에서 빈손으로 버티다가 뒤늦게 저지 투쟁에 나선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여야 협상의 캐스팅보트를 쥔 바른미래당은 원내대표의 일방적인 의원 사·보임 등으로 당내 갈등만 증폭시켰다. 패스트트랙 지정 논란에서 여야 모두의 정치력 부재가 극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패스트트랙 지정으로 당장 선거법과 공수처법, 형사소송법 등이 처리되는 것은 아니다. 이 법안들을 최장 330일까지 해당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에서 심의한 뒤 처리한다는 일종의 절차 규정이다. 뒤집어 보면 여야가 다시 쟁점 법안들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 것이다. 법안 내용을 엄격히 따져서 올바른 입법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패스트트랙에 대한 한국당의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논의 기한을 단축해 속전속결로 진행하려는 꼼수를 버려야 한다. 그래야 민주당 새 원내대표가 선출되는 5월 8일 이후에 국회 정상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다.

여야 협상은 일방을 제압해야 하는 죽고 살기 승부가 아니다.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율해 ‘윈윈’ 해법을 찾는 정치력이 필수적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법안들의 내용을 원점에서부터 논의할 수 있다는 열린 자세로 대화의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한국당도 지난해 말 합의 정신으로 돌아가 이들 법안의 입법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정하고 대화에 응해야 한다.
#선거법#공수처#검경 수사권 조정#패스트트랙#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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