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유토피아를 꿈꾼다. 현실에는 없는 세계라서 더 갈망하는지도 모른다. 1516년 출간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자유와 평등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공정하고 풍요로운 이상국가를 묘사하고 있다. 물론 전혀 그렇지 못한 절망스러운 현실에 대한 비판을 위해 고안된 개념이었다. 인류는 분명 지난 수 세기 동안 놀라운 발전과 변화를 이루어냈지만 과연 유토피아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졌을까.
중국의 현대미술가 리우웨이는 21세기의 유토피아를 재현해 그 답을 제시한다. 회화에서부터 비디오, 조각, 대형 설치까지 여러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해 온 그는 다양한 일상의 재료를 이용해 도시라는 주제를 표현해 왔다. 이 거대한 설치작품은 정치, 종교, 문화를 상징하는 세계 각국의 유명 건축물들로 이뤄진 가상의 도시이자 권력의 유토피아를 의미한다. 콜로세움에서부터 구겐하임미술관, 성 베드로 성당, 톈안먼(天安門), 유엔본부, 미국 국회의사당까지 권력과 욕망을 상징하는 세계적 건축물 25개의 모형으로 구성돼 있다. 거기엔 한국의 국회의사당도 포함된다.
그런데 이들 건축물이 가진 막강한 힘과 중요성은 작가가 선택한 재료 때문에 한순간에 코믹하고 엉성하고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바로 애완동물용품점에서 파는 ‘개껌’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황소 가죽의 내피로 만들어진 개껌은 강아지가 씹거나 가지고 노는 간식이자 장난감이지만 여기선 권력의 유토피아를 짓는 도시 건축의 기본 재료로 사용됐다.
16세기의 모어는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이상사회를 꿈꾸어 보라고 권했지만 21세기의 미술가는 이젠 그 어떤 유토피아도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는 것 같다. 오늘의 세계가 권력자들에게만 이상향이라면 차라리 개한테나 줘버리고 싶었던 걸까. 작품 제목을 ‘맘에 들지! 먹어봐!’라고 붙였다. 이 명령어가 향하는 대상이 권력에 눈먼 이들인지 굶주린 개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작가는 두 대상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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