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날이었던 1일 오후 경기 고양시 A쇼핑몰. 다섯 살 안팎으로 보이는 ‘꼬마 킥라니(킥보드+고라니)’들이 장난감 가게와 키즈카페 등이 밀집한 3층에서 킥보드를 탄 채 헤집고 돌아다니는 동안 어린 자녀와 동행한 부모들은 조마조마 불안해했다. 7세 딸과 쇼핑몰을 찾은 여모 씨(36·여)는 “아이들이 킥보드를 타다 딸과 부딪힐까 봐 불안하다”고 했다.
이 쇼핑몰 곳곳에는 ‘주행기구 이용 금지’라고 적힌 팻말이 붙어 있었다. 스피커에선 ‘킥보드 이용이 불가하다’는 쇼핑몰 측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기자가 현장을 지켜본 1시간 30분 동안 직접 본 꼬마 킥라니는 10명이 넘었다. 헬멧 같은 안전장비를 착용한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부모들은 실내에서 내달리는 아이들을 말리기는커녕 킥보드에 올라타 직접 시범까지 보였다.
최근 휴일에 가족들과 쇼핑몰·대형마트를 찾는 시민들은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꼬마 킥라니까지 피해 다녀야 해 애를 먹고 있다. 쌩쌩 달리는 킥보드를 멈추는 데 익숙지 않은 아이들은 종종 사고를 내기도 한다. 어린아이가 타는 킥보드에 부딪혀 코뼈가 부었다거나 킥보드에 밟혀 발가락을 다쳤다고 호소하는 사례들이 많다.
토요일이던 지난달 13일 오후 인천 연수구의 B아웃렛에서는 20대 남성이 킥보드를 타고 측면에서 돌진한 5세 남자 아이에게 다리를 부딪혀 휘청거렸다. 의류매장에서는 4세 남자 아이가 킥보드를 타고 좁은 판매대 사이를 돌아다녀 손님들이 피해 다니기도 했다. 충남 홍성군에 사는 이모 씨(31·여)는 3월 말 한 대형마트의 무빙워크에서 킥보드를 타고 내려오던 아이에게 받혀 발뒤꿈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부상을 입었다.
쇼핑몰과 대형마트 측은 곳곳에 ‘킥보드 출입 금지’ 안내판을 붙여 놓았다. 하지만 고객을 강제로 쫓아낼 수는 없어 애만 태우고 있다. B아웃렛 관계자는 “하루에도 수십 명이 킥보드를 갖고 오는데 그렇다고 고객들한테 나가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자녀들의 킥보드 질주를 방관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평소 학원 스케줄로 바빠 야외활동을 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쇼핑몰이나 마트에서라도 운동 삼아 탈 수 있게 하는 거라고 항변했다. 쇼핑몰 내부가 야외의 인도보다 안전하고 미세먼지 걱정도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기자에게는 ‘내 아이들의 뛰어놀 권리가 다른 시민의 안전보다 더 중요하다’는 어긋난 자녀 사랑으로 들렸다. ‘실내에서는 주행기구를 타면 안 된다’는 쇼핑몰 규정을 부모의 묵인하에 어기는 아이들이 어떤 어른으로 자랄지도 걱정이 됐다. 기자가 주말 동안 돌아다닌 쇼핑몰들은 편의를 위해 규칙을 외면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아이들이 그대로 보고 배우는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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