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물리학자의 비밀의 정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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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에게 양자의 세계란 ‘나만의 비밀 정원’이다. 이기진 교수 그림
물리학자에게 양자의 세계란 ‘나만의 비밀 정원’이다.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잠이 안 오는 새벽이 있다. 연구가 안 풀리는 날이다. 아침까지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해결책을 찾아본다. 해결책이 나오는 날은 침대를 박차고 새벽같이 학교로 달려간다. 하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날이 더 많다.

물리학을 연구하면서 갖게 된 즐거움 중 하나는 비밀의 정원처럼 나만이 드나들 수 있는 시공간을 가지게 됐다는 점이다. 나노 공간 속에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양자의 세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우주라는 세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지만 물리학의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는 나에게 있어 허구의 세계만은 아니다. 어찌 보면 그곳이 내가 발 디디고 있는 일상의 현실보다 더 재미있는 곳이다.

지구상에 생활하는 생명체는 지구라는 열차를 타고 우주의 시공간을 여행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 여행의 특징은 무한 반복에 있다. 하루 24시간, 한 달, 1년을 주기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여행이다. 이런 주기적이고 반복된 시공간이 지구에 사는 우리의 사고와 삶, 일상을 규정한다.

내 일상 역시 다르지 않다.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도착해 커피를 마시고 책상에 앉아 수업을 준비하고 논문을 쓰고 학생들을 면담하고 해가 지면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 잠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일상의 시공간이 있다면 아인슈타인의 무한한 시공간 역시 존재한다. 지구와 다른 등속도로 움직이는 우주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세상은 달리 보인다.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동시에 일어난 일들은 없다. 각자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 따라서 우주에서 절대적인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적인 시간을 가질 뿐이다. 이 아이디어를 확장시킨 것이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의 시작이다. 이 이론을 통해 아인슈타인은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특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지구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평범한 우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지구상에 존재하는 우리에겐 아무런 영향이 없을 수 있다. 절대적인 모든 가치관을 바꿔놓을 것 같은 물리학적 이론이 존재하지만, 하루하루 우리의 일상은 달라질 것도 없고 변함이 없다. 있다면 우리 현실 세계의 시공간이 상상력에 의해 넓어지고 그만큼 꿈꿀 수 있는 영역이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확장된 것 아닐까?

최근 공상과학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에서 인간이 양자 스케일인 극한의 소우주로 들어가 시간과 공간에 대한 모든 개념들이 무의미해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노미터 이하의 양자역학이 적용되는 세계로 이동하여 시간여행을 한다는 상상 속 이야기가 현실 이야기처럼 리얼하게 펼쳐진다. 이런 양자역학을 이용한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들은 견고한 현실을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환상이 아닐까? 물론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물리학#양자역학#특수 상대성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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