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일 4선 이상 중진과의 오찬에서 이같이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21대 총선 주요 공천 룰을 확정했다. 각 언론은 정치권이 총선 모드에 돌입했다고 보도했다. 21대 총선은 내년 4월 15일 치러진다. 아직 1년 가까이 남았다. 보통 사람들에게 ‘총선 정국’ ‘총선 모드’ 등은 마치 다른 나라 얘기처럼 들릴 터다. 하지만 정치권의 시계는 다르다. 각 지역구 밑바닥은 이미 전쟁터다.
20대 총선 때 얘기다. 동갑내기 정치지망생 A와 B가 있었다. A와 B는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일할 기회를 잡았다. 대선이 끝난 뒤 A와 B는 행정관으로 나란히 청와대로 들어갔다. A는 총선을 1년 남짓 앞둔 봄철 청와대를 나와 지역구 바닥을 훑기 시작했다. B는 좀처럼 청와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B는 총선을 6개월가량 남겨둔 가을, 가까스로 지역구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6개월 차이가 낳은 결과는 컸다. A는 이듬해 치러진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고 본선까지 내리 통과, 국회에 입성했다. 경선에서 낙마한 B는 여전히 정치지망생으로 남아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당내 경선을 치르는 정치 신인에게 청와대 출신 등 ‘경력’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이해찬 대표는 최근 “전략공천은 없다”고 밝혔다. 모두가 당내 경선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당내 중진들을 향한 ‘인위적 물갈이는 없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하지만 ‘특별 대우’를 내심 기대했던 청와대 출신 출마 대기자들은 속내가 편치 않을 것이다. 신인들은 경선에서 표를 줄 ‘내 당원’을 새로, 많이 만들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 상당수 당원을 확보하고 있는 현역 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을 상대하려면 더욱 그렇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은 내년 경선에서 투표권을 가지는 권리당원의 기준을 7월 31일까지 가입, 6개월 이상 당비를 내는 당원으로 확정했다. 앞으로 3개월이 경선의 승패를 가를 수 있는 ‘골든타임’이 됐다. 각 지역구에선 누가 더 많은 당원을 가입시키느냐를 두고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 전남도당은 최근 신규 당원이 1만2000명 이상 늘었다고 한다. 전남 순천은 2, 3개월간 당원이 5000명 이상 급증했고, 여수을 2000여 명, 여수갑 1000여 명 등 당원 수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출마 대기자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21대 총선 출마가 거론되는 청와대 전·현직 인사는 40명가량 된다. 상당수가 청와대를 나와 총선 준비에 매진하고 있지만 10명 안팎의 수석비서관, 비서관, 행정관 등은 아직 근무 중이다. 내년 총선에 실패하면 2022년 지방선거, 2024년 총선 때나 돼야 다시 기회를 엿볼 수 있다. 현 정부 임기 이후다. 지역구로 자꾸 눈이 갈 수밖에 없다.
올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골든타임이기도 하다. 집권 2년을 넘어 3년 차에 접어들면 공직사회를 이끄는 동력이 크게 떨어진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참모들로는 한계가 있다. 참모를 교체하든, 참모들이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하든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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