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우선]아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마음의 근육’을 키울 추억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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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정책사회부
임우선 정책사회부
어린이날 아침, 가족들과 외출 중에 폐지를 줍는 한 할아버지를 봤다. 어린이날 기대감을 종알종알 풀어내는 아이들 목소리를 들으며 할아버지를 바라보니 순간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저 노인도 한때는 누군가에게 너무나 소중한 아이였을 텐데…. 폐지를 주우며 어린이날 아침을 보내는 자식의 노후를 본다면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문득 지난해 본 통계청 데이터가 떠올랐다. 통계청의 미래인구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지금 초1인 학생들이 30세가 되는 2042년에는 65세 이상 인구수가 1775만 명에 달해 전체 인구의 34.4% 수준이 된다. 노인 인구가 738만 명(14.3%)에 불과(?)한 지금도 이렇게 어려운 노인이 많은데 우리 아이들은 지금보다 2.5배 많은 노인을 먹여 살려야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이 노인이 되는 2100년 즈음에는 어떨까. 우리 아이들은 100세 어린이날까지 행복할 수 있을까. ‘아이들 세대 어깨에 얼마나 많은 짐이 지워져 있나’를 생각하니 우리 부모 세대가 우리에게 해준 것만큼 아이들이 누리고 사는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이런 모호하고 무거운 기운을 내뿜는 한국의 미래사회 앞에 우리가 어린이날 고민할 건 선물만이 아니다. 꼭 사회 문제가 아니어도 학업부터 교우 관계까지 한국 아이들이 어른으로 자라며 겪는 일은 하나하나 모두 녹록지 않다. 생업을 위해 어떤 역량을 갖출지는 물론이고 이런 힘겨운 일들을 함께 공감하고 이겨낼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것도 숙제다. 이런 건 값비싼 선물만 사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린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최근 어린이날을 앞두고 남녀 초등학생 3200여 명을 설문했더니 어린이날 하고 싶은 일로 48%가 장난감, 선물, 용돈을 원한다고 했다. 정반대로 ‘관계’를 고파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특히 여학생들의 경우 ‘가족들과 놀러가고 싶다’는 응답이 40%로 가장 많았다. 기타 주관식 응답을 써낸 학생들도 10명 중 1명꼴이었는데 남학생 기타 응답의 태반은 ‘게임하고 싶다’ ‘현질(현금으로 게임 아이템 사기)하고 싶다’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아이들에게 유년기 ‘의미 있는 선물’을 할 수 있을지 여러 아동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중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유명한 오은영 박사의 조언이 기억에 남는다.

오 박사는 “한 인간이 힘든 일을 겪을 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이 어린 시절에 경험한, 부모와의 좋았던 추억”이라며 “생각만 해도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즐겁고 따뜻한 추억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주라”고 말했다. 조건 없이 사랑받았던, 즐거웠던 유년기 경험은 사춘기는 물론이고 어른이 돼서도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엄청난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예컨대 똑같이 게임기를 사줘도, 사주는 행위만이 아닌 함께 게임을 즐긴 추억 자체가 선물이 돼야 하는 식이다.

그는 또 “아이들에게 손편지를 쓰라”고 조언했다. 시시때때로 사랑하는 마음을 글로 적어 전하고, 이를 모아 책처럼 묶으면 아이들과 대화가 어려운 사춘기에도 부모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했고 소중하게 여겼는지 알게 된다고 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도, 감가상각 되지도 않을 부모의 진짜 선물이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imsun@donga.com
#어린이날#유년기#오은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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