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작업실을 계약했다. 서울 마포구 ‘연트럴파크’ 끝자락 19.8m²(약 6평)짜리 공간.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75만 원, 난방비는 별도다. 둘이 반씩 내도 한 달에 90만 원이 숨만 쉬어도 나갈 예정이다. 설렘보다 걱정이 밀려올 때면 래퍼 스윙스의 ‘나는 자기 암시’ 음원을 틀어 놓고 중얼거린다. ‘나는 월세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사업자를 가진 영상 제작자로 2년을 집에서 일했다. 첫 1년은 하숙집에서 일했고 그 다음은 전셋집에서 일했다. 삶의 다양한 모습을 못 보고 자라 회사 다니는 게 최고인 줄 알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출퇴근 없는 삶, 진짜 좋다. 아직도 친구들은 나를 불완전한 존재로 여기며 구인구직 링크를 보내곤 하지만. ‘나 회사 다니고 있거든? 내가 만든 회사에….’ 노트북만 있으면 길바닥에서도 일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나만의 ‘워크 룸’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 그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로 말하자면 내가 지원했다 떨어진 미디어 스타트업 회사의 프로듀서(PD)인데 지난해 생일파티 때 처음 알게 됐다. 생일 당일, 믿었던 친구들이 하나둘 ‘노쇼’한 탓에 다급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세계 속 친구들을 초대했는데 그중 한 명이었다. ‘뻘쭘하게’ 모인 우리는 서로를 소개했고 PD였던 그 친구는 자기가 만든 ‘세탁소의 여자들’을 보여줬다. 낙태죄 폐지에 관한 짧은 모바일 다큐였는데 모인 여자들이 눈을 반짝거리며 끝까지 함께 봤다. 그때의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은 걸까. 그렇게 우리는 회사 동료로는 만나지 못했지만 작업실 동료로 함께하게 됐다.
우리가 함께 무언가를 하는 건 아니다. 각자 하고 싶은 걸 할 뿐이다. 남들 회사갈 때 갈 곳이 필요했던 프리랜서는 그곳에서 작업을 한다. 퇴근 후 소소하게 생업과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 보고 싶었던 회사원도 그곳에서 모임을 열 계획이다. 그래도 공통의 이름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이것저것 던졌다. ‘영감님 어때? 영감이 떠오르는 곳.’ ‘샤워룸은? 샤워할 때 주로 아이디어가 생각나니까. 아니면 피땀눈물?(피땀눈물은 방탄소년단의 2집 타이틀곡이다)’
친구의 노트엔 ‘나베알’이라 적혀 있었다. ‘그게 뭐야?’라고 물었더니 영화 포카혼타스 OST 중 ‘바람의 빛깔’의 가사를 줄여본 거라고 했다. ‘얼마나 크게 될지 나무를 베면 알 수가 없죠.’
그렇게 메모장을 켜 두고 멍 때리고 있는데 화면 속 흐릿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To-do(투두). ‘오늘의 할 일’을 기록하는 거다. ‘To do list, 오늘 할 일… 이걸로 할까? 결국 목표는 이 공간에서 뭐든 해보는 거니까!’ 그렇게 작업실 이름을 ‘투두’로 정했다. 뭔가 초콜릿 이름 같지만 애정을 붙여 보기로 한다. 1년 계약한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누군가에게 발탁되기 너무 힘든 세상이다. 잘 보이려 노력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데 결과는 알 수 없다. 그럴 바엔 직접 해보면서 이게 맞는지 아닌지 얼른 파악하는 것. 스스로 기회를 만들고, 자리를 넓혀 가는 것. 그게 우리가 이곳에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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