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미국 피츠버그에서 맥아더 휠러라는 강도가 복면도 안 쓴 채 은행 두 곳을 털었다. 경찰은 감시카메라 영상을 보고 쉽게 범인을 찾았다. 당시 휠러는 경찰이 자신을 찾아낸 것에 대해 무척 의아해했다고 한다. 황당하게도 그는 자신에게 투명인간이 되는 능력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휠러의 경우처럼 극단적이진 않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미 여러 심리학 연구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사람들의 이런 심리적 오류를 고려할 때 각종 범죄 행위나 부정부패, 비리를 막을 수 있는 효과적 대책은 무엇일까? ‘나는 잡히지 않을 거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걸리면 사형에 처하겠다’ 식의 초강수를 둔다 한들 과연 효과가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처벌의 ‘확실성’에 대한 인식을 강화해야 한다. “범죄 예방 효과는 형벌의 가혹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확실함에서 온다.” 근대 범죄학과 형사정책의 토대를 마련한 고전 ‘범죄와 형벌’에서 계몽주의 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가 꿰뚫어 낸 통찰이다.
베카리아에 따르면 잠재적 범죄자들은 더 잔혹해진 형벌이 두려워 범죄를 덜 저지르게 되는 게 아니라, 죄를 지을 경우 처벌받을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느낄 때 범법행위를 더 자제하게 된다. 처벌을 피해 갈 수 있다는 심리적 착각을 줄이고, 범죄를 저지르면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고 믿게 만드는 문화적·제도적 장치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 사회에는 죄를 지었을 때 처벌을 피해 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처벌의 확실성’에 대해 회의적인 인식이 팽배하다. 기업과 금융기관, 공공부문에서도 ‘성공하면 사업가, 실패하면 사기꾼’, ‘성공한 범죄는 처벌할 수 없다’ 같은 말이 자주 쓰인다. 채용비리, 탈세, 횡령, 정보유출, 사기 등 불법행위가 만연하지만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이는 스포츠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간 스포츠 업계는 승부조작, 입시 비리, 폭력·성폭력 등 끊임없이 발생하는 각종 비리 및 부정행위로 몸살을 앓아 왔다. 부정·비리 사건이 터지면 관련 협회 등은 주동자를 색출하고 이들이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규명하는 데 많은 힘을 쏟는다. 하지만 가해자 조사 및 처벌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재발을 예방하는 면에서 얼마나 효과적일까? 성폭행처럼 국민적 공분을 사고 미디어의 보도가 집중되는 사건의 가해자를 엄중히 처벌하면 대중에게 쾌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대중의 분노나 불안을 풀어주는 것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오히려 이러한 카타르시스는 문제가 해결된 것과 같은 착시효과를 줄 수 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는 더 이상의 비리와 부정행위를 막겠다며 각종 대책을 쏟아낸다. 하지만 이런 대책에 긍정적인 기대를 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부정부패에 취약한 조직문화와 제도,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부정부패를 저지른 악인을 모조리 솎아내 봤자 곧이어 또 다른 이들이 그 자리를 채워 악행을 이어갈 뿐이다.
비만의 원인이 과식과 운동 부족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원인을 안다고 해서 비만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스포츠 분야의 부정과 비리의 근본원인이 국가주의, 승리 지상주의, 위계적인 서열문화 등이라는 걸 우리는 알 만큼 안다. 문제의 원인을 알고 대책을 세우고 애써 봐도 같은 사고가 터진다면 ‘왜 기존 대책들은 효과가 없었을까?’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도, 가해자를 처벌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같은 방법을 계속 썼는데 문제가 좋아지지 않고 반복된다면 다른 방식을 한번 시도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가혹한 처벌과 확실한 처벌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처벌의 가혹성보다는 확실성을 먼저 확립하고 강조하는 방향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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