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원죄가 있다. 70여 년 검찰 역사를 돌이켜보면 과오가 한두 건이 아니다. ‘검찰이 사정기구로서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 대담에서 밝힌 이 평가에 검찰은 정면으로 반박할 수 없는 처지다. 특히 문 대통령이 2월 권력기관 개혁 전략회의에서 지적한 ‘대통령과 그 주변 권력자들에 대한 검찰의 두려움’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도입의 핵심 근거로 들었다. 검찰은 두려워하니 아예 수사하지 말라는 의미다.
극명한 사례가 있다. 2000년 11월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검사는 동방금고 부회장으로부터 “국가정보원 경제단장에게 5500만 원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하지만 수사는 거기서 중단됐다. 청와대-국정원-검찰 수뇌부가 일사불란하게 막은 것이다. 부장검사는 수사 기록을 가져가 한동안 부부장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부부장이 직접 검찰 수뇌부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 안 되면 사표를 쓰겠다”고 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결국 2001년 5월 검찰 인사에서 부부장은 헌법재판소로 옮겼고, 수사를 막은 수뇌부는 승진했다.
하지만 그 전모가 본보 보도로 공개되자 검찰은 돌변했다. 2001년 9월 18일자 1면에 ‘국정원 간부 작년 거액수수 혐의, 검찰 소환조사 않고 덮었다’는 제목의 기사가 나갔고, 검찰은 그다음 달 5일 경제단장을 구속했다. 10개월간 중단됐던 수사가 보도 후 단 17일 만에 구속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이후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권부에 대한 검찰의 굴신(屈身)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그중 권력 개입 의혹이 꼬리를 물어 결국 검찰이 재수사를 한 게 국정원 댓글 사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등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공수처 설치 법안을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못하는 건 이런 오욕의 역사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수처는 법안대로 설립될 경우 검찰과 달리 영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될까. 대통령과 그 주변 권력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의의 사도가 될까. 그렇게 돼서 조국 대통령민정수석은 9년 전 자신의 대담집에서 밝힌 ‘검찰 쪼개기’ 구상이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게 될까. 그는 책에서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바꿀 수 있다며 “검찰을 쪼갠다고 하면 검사들이 반발하겠죠. 그러면 ‘너 나가라’고 하면 되는 거예요”라고 했다.
전망은 어둡다. 현직 대통령의 임명을 받은 공수처장이 임명권자가 부담스러워할 권력 수사를 주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마다 대통령 집권 초반 임명된 검찰총장이 권력 수사를 망설였듯이 말이다. 어쩌면 공수처장과 공수처 검사들이 더 주춤거릴지 모른다. ‘늘공’(직업 공무원)인 검사들은 정권 교체 후에도 관직을 유지하기 위해 권부와 거리를 둬야 하는 원심력의 영향권에 있다. 반면 공수처 퇴직 후 일정 기간 공직을 못 맡는 공수처장과 검사들은 그런 부담 없이 임명권자와의 관계에 매몰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임용 제한이 그 반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런데 판사, 검사뿐 아니라 변호사나 그 자격이 있는 대학교수 출신도 공수처장이 될 수 있다. 법안엔 이런 ‘어공’(어쩌다 공무원) 공수처장이 청와대 어공처럼 굴지 못하게 강제할 수단이 없다. ‘권력 친위 수사기관’의 등장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게다가 법조계에선 헌법기관이 아닌 공수처가 행정부 소속인지 불분명하고, 헌법에 규정된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행사하게 돼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쪼개기’는 반대한다고 ‘너 나가라’고 할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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