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필두로 지지세력만 염두에 두고
비판 개의치 않는 위험한 직진 분위기
온 국민 주시해도 공권력은 뻔뻔한 편향
경제현실 어긋난 대통령의 장밋빛 발언도
“옳은 길 가고 있다”는 지지층 겨냥 메시지
이 정부의 검찰, 경찰, 행정권력이 온 국민이 주시하는 사건을 공개적으로 다룰 때마저 노골적으로 한쪽 편을 드는 담대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대통령이 경제현실을 대다수 전문가·언론의 진단과 정반대로 장밋빛으로 규정하는 당당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좌우, 노사, 환경-개발 등등 대립 현안들에 대해 공권력이 정권의 입맛에 맞게 한쪽 편을 드는 것은 이 정권 만의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1987년 6월항쟁 이래 공권력이 이번 정권에서처럼 중인환시리에 당당하게 한쪽 편을 든 경우는 드물었다.
더구나 바로 앞 정권이 블랙리스트를 비롯해 편파적 권력 집행으로 궤멸되는 걸 지켜본 직후다. 그래서 이제 최소한 이것 하나 만은 사라지겠지라는 기대, 즉 공권력이 ‘정권의 시녀’처럼 편파적으로 운용되는 그런 고질적인 병폐는 없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충만한 상태에서 들어선 정권인데, 잠깐의 휴지기도 없이 곧바로 과거 관행이 되살아났다.
손석희 JTBC 사장에게 배임 혐의를 적용할지 법리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외부인사들로 구성된 수사이의심의위원회 멤버 10여 명 중 1명의 변호사만 불렀는데 하필 민변 출신이다. 형식은 밟되 어떻하든 정해진 결론으로 달려가려는 속내가 읽히는데,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점은 이 사건이 실제 중요도와 별개로 얼마나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지 알면서도, 누가 봐도 비난받을 게 뻔한 선택을 한 경찰의 배짱이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사건, 김경수 경남지사 사건, 만우절에 김정은 패러디 대자보를 붙인 ‘전대협’ 사건 등에서도 국민들이 설마하며 주시했는데도 경찰은 한쪽으로 기울었다.
정권이 손보려는 인사들에 대해선 별건수사까지 동원해 세계최고의 수사력을 발휘한 검찰은 정권에 불리한 수사에선 법리상 한계 등을 머쓱한 듯 드러낸다.
이 정권 들어 이렇게 대담하게 편들기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은 비판세력의 눈은 의식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결과다. 우리 편만 바라보고 달리겠다는 전략의 결과물인데, 근저에는 노무현 정권 때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등으로 지지층이 등을 돌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판단이 깔렸을 수 있다.
오로지 지지세력만 바라보고 직진하는 선두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서 있는 것 같다. 그의 최근 발언들에선 마이웨이를 고수할 것이며, 반대세력은 개의치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게 느껴진다.
“우리 경제가 거시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청년 실업률이 아주 낮아졌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 “직장인들의 삶과 질은 분명히 개선됐다” 등등 대통령의 발언들은 지지자들에게 우리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표현을 통해 지지자들이 주변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하려는 것일 수 있다. 전문가들과 언론, 야당이 아무리 비판해도 지지자들에게만 확고한 논리를 심어주면 된다는 생각 같다.
“적폐수사는 앞의 정부에서 한 것이고 우리 정부는 기획하거나 관여하지 않고 있다”는 대통령 발언도 그런 맥락으로 보지 않는 한 이해하기 어렵다. 최순실 등에 대한 수사가 이 정부 출범 이전 이뤄진 걸 논리적 근거로 삼은 듯한데, 지난 2년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 나라 전체를 뒤흔든 적폐청산 수사를 전 정권이 한 것이라고 하는 건 지나친 논리비약이다. 만약 4대강 보 가운데 하나인 세종보가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수립된 행정도시 기본계획에 따라 만들어졌으니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기획한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얼마나 터무니없게 여겨지겠는가. 그럼에도 문 대통령의 논리는 “2년 넘게 과거만 파헤치니 피로하다”는 비판론 앞에 위축된 지지세력에겐 새롭게 무장할 논리를 제공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올 봄 제기한 친일파 논쟁도 지지세력에게 도덕적 우월감을 확고히 심어주고, 반대파를 낙인찍는데 효과적인 재료다. 진보학계 거두인 최장집 교수도 지적했듯이 관제민족주의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으며, 종북 논쟁 못잖게 낡은 수구적 프레임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감수하고도 정치적 이득이 있다고 봤을 것이다.
좌파 진영으로선 지지세력에 집중하는 정치는 충분히 유혹을 느낄 만 하다. 숫자에서 다수인 계층 피라미드의 중하위층을 겨냥한 포퓰리즘 정치는 아무리 안팎에서 비판을 받고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려도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여권 지도부가 진보 20년 집권을 외치는 것은 덕담이 아니다. 그들은 진보 장기집권이 대한민국을 위해 옳은 길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고, 선거에 이기기 위해선 지지세력에 소구할 정책이라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을 분위기다. 대통령을 필두로 지지세력만을 바라보고, 비판론자의 시선에 개의하지 않는 직진 분위기가 확산되는데, 참으로 위험천만한 질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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