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한미 군 지휘관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한미의 긴밀한 공조는 최근 북한의 ‘단도’ 미사일을 포함한 발사체의 발사에 대한 대응에서도 아주 빛이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국이 차분하고 절제된 한목소리를 냄으로써 북한이 추가적인 도발을 하지 않는 한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해 나갈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사령관 등 주한미군 수뇌부를 만나 한미의 절제된 대북 대응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4일과 9일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에도 어떻게든 한반도 정세 악화를 막고 멈춰선 북한과의 대화를 복원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분명히 읽힌다.
하지만 한미의 ‘차분하고 절제된 한목소리’ 대응이 지나친 조심스러움으로, 나아가 북한 도발의 실체를 애써 눈감으려는 저자세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정부와 군은 북한의 첫 도발 이후 보름이 넘도록 그 발사체의 실체를 두고 “정밀 분석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미국 정부에서는 물론 주한미군에서조차 ‘탄도미사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보도까지 나왔지만 여전하다.
어제 문 대통령이 누구나 ‘탄도미사일’이라고 들을 만한 ‘단도 미사일’이라고 말한 것을 그저 실언이라고 넘기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단거리 미사일’을 잘못 말한 것이라고 정정했다. 하지만 이런 해프닝은 명백한 유엔 대북제재 위반인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부정하려는 심리상태에서 나온 것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28 하노이 결렬 이후 한반도 정세는 언제 깨질지 모를 불안한 평화, 기약 없는 대화 대기 상태에 있다. 북-미 대화의 전제였던 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동시 중단, 이른바 ‘쌍중단’은 이미 위협받고 있다. 북한은 ‘연말까지 미국의 용단을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앞으로 도발 수위를 계속 높여갈 경우 한반도 정세는 금세 가파른 대결 국면으로 돌아갈 수 있다. 상황 관리를 위한 신중한 대응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북한의 오판을 부추겨선 안 된다. 특히 곧 닥쳐올 수 있는 안보 위기에는 한 치의 소홀함 없이 대비해야 한다. 작금의 불안한 정세 속에서 한미동맹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부터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향후 평화 프로세스의 정상적 가동도 기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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