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미국 한인 인터넷 커뮤니티인 ‘미시USA’에 한국에서 건강보험으로 병원 진료를 받는 꼼수를 공유하는 글이 올라왔다. 미국 이주 이후 건강보험료를 낸 적 없는, 각각 시민권과 영주권을 가진 부부의 실제 경험담이었다. 유학생이나 관광비자로 해외로 건너간 다음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취득하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해외 거주 내국인 신분으로 남는 것을 악용했다. 글을 쓴 이는 “우리나라 너무 좋다. 친절하고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알아봐 주고 복지가 너무 좋은 것 같다”는 감상을 덧붙였다가 공분을 샀다.
▷‘한국 건강보험이 좋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이를 공짜로 누리려는 ‘얌체족’이 늘고 있다. 신원 확인이 허술하던 시기에는 주로 지인의 건강보험을 도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에는 건강보험료는 찔끔 내고 왕창 혜택을 받는 외국인, 재외국민, 해외 거주자들이 문제다. 2015년 혈우병을 앓는 자녀를 둔 재중동포가 한국에 건너와 건강보험에 가입했다. 희귀난치성질환이라 진료비가 4억 원대에 이르렀는데 건강보험 재정에서 대부분 부담했다. 이 동포가 한국에 들어와 납부한 건강보험료는 260만 원이었다. 외국인 건보 가입자로 인한 적자 규모는 지난해 2000억 원을 넘어섰다.
▷이 때문에 지난해 12월부터 외국인, 재외국민은 한국에서 6개월 이상 체류해야 건보 적용을 받도록 건강보험법이 강화됐다. 그래도 장기 해외 거주자들의 꼼수는 막기 어렵다. 해외여행객 유학생 주재원 등은 해외 체류 기간 동안 건강보험료 납부가 중단된다. 그 대신 매달 1일 건보료 부과 자격을 심사하는데 이날 하루만 한국에 있지 않으면 건보료를 내지 않고도 건보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매달 2일 이후 입국해 건보료를 내지 않고 진료만 받고 출국한 해외 거주자가 최근 3년간 23만 명. 건보 재정 420억 원이 새어나갔다.
▷민간보험 위주인 미국은 보험료가 워낙 비싸고 의료비 부담이 커서, 공공의료체계가 잘 갖춰진 영국은 효율성이 떨어져서 병원 가기가 쉽지 않다. 1977년 도입된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전 국민이 가입한 사회보험인데 의료비는 싸고 의료기관 서비스의 질은 높다. 중동·아시아 개발도상국이 ‘한국형 건강보험’을 벤치마킹할 정도다. 2017년 건강보험 청구 및 심사시스템을 바레인에 173억 원을 받고 수출하기도 했다. 건강보험 이식을 원하는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은 최근 보건차관에 한국인 공무원을 임명했다. 아무리 잘 설계된 제도라도 이를 갈고 닦아 쓰는 것은 사람이다. 무임승차하는 ‘얌체족’이 많아지면 균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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