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원의 인간, 11차원 우주…당신의 세상은 몇 차원 입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3일 14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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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4차원이시네요.”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마치 알 수 없는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처럼 보인다, 이런 의도로 얘기한 것이겠지만 기분 나쁘지 않다. 세상 사람들과 조금 다르게 바라보고 산다는 것에 불편한 점이 없을뿐더러 조금 다르게 살아도 세상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거나 물리적으로 세상이 변한다거나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리학자인 나에게는 더 복잡한 차원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있다. 그런데 물리학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쉽게 문제를 풀고 논문을 낼 수 있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나이가 드는 현상이라 생각할 수 있을 테지만 요즘은 논문 쓰기가 어려워졌다. 이제 온통 내가 지금껏 풀지 못한 어려운 문제만 남은 것일까?

얼마 전부터 15년 된 5등급 디젤차를 폐차하고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아침에 일어나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마치 다른 우주로 떠나기 위해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지하철을 타는 순간 덜컹거리는 전차 속에서 누구는 핸드폰을 보고 누구는 졸고 누구는 음악을 듣고 누구는 멍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본다. 다 같이 지하철을 타고 멋진 1차원 여행을 하다가 지하철이 멈추면 각자의 우주로 떠난다.

인간은 3차원 생명체다. 2차원 평면이라면 대사활동을 할 수 없다. 소화기관을 갖춘 건강한 3차원 인간은 지속성이라는 생명의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시간이 포함된 4차원 시공간이 필요하다. 인간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4차원이 필요한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서로 상관없는 것들이 아니라 그림자처럼 결합된 시공간으로 통합되어 존재한다.

우리는 가만히 있지만 새로운 관점과 패러다임의 시대가 오고 있다. 최근 들어 초끈이론과 M-이론이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초끈이론과 M-이론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공간이 일상적인 3차원이 아니라 11차원의 초공간 속에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입자들이나 물질들은 끈이나 막(membran)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이 진동하는 패턴에 따라 우리의 눈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어려운 이론이 필요할까. 하루하루 살기도 버거운데. 그런데 알다시피 이런 이론이 있어야만 우리는 우주와 우리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다. 우주에 비해 인간은 먼지만큼 작고, 이런 인간의 눈을 통해 보는 세상은 한정되어 있다. 둥근 지면도 평평하게 보인다. 3차원의 건물이 직선으로 보이는 것처럼, 우주는 엄청난 스케일로 펼쳐져 있기 때문에 우리의 눈에는 4차원의 시공간처럼 보이는 것이다.

4차원을 살아가는 지구의 생명체에게 경험할 수 없는 시공간은 분명 존재한다. 인간이 기준이 된다면 4차원 공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없고 도달할 수 없는 시공간은 존재한다. 지구를 코끼리가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고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4차원 공간으로 설명되던 시절이 이제는 11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우리는 가만히 있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변하고 있는 것일까.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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