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정성은]‘엄마 친구 찾아주기’ 프로젝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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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어렸을 적 엄마는 내가 친구들이랑 노는 걸 탐탁지 않아 했다. 한 번은 친구를 집에 데려왔는데 나를 뒷방으로 불러 귓속말로 얼른 보내라고 했다. 친구랑 노는 건 시간낭비며 그 시간에 문제집 하나라도 더 풀길 바랐던 엄마. 그런 엄마가 친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첫째는 동생이 학교에서 친구 사귀는 것에 상처를 받아서였고, 둘째는 나이가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어서였다.

외로워하는 엄마에게 유료 독서모임 ‘트레바리’를 추천했다. “요즘 사람들은 독서모임을 핑계로 가서 친구 사귄대∼ 엄마도 한번 해볼래?” 젊은 사람만 있을까 걱정하기에 ‘삶과 죽음’ 클럽을 권했다. 다행히 엄마는 신문물을 잘 받아들였고, 휴대전화로 다음 시즌 결제까지 하는 등 놀라운 발전을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새 친구는 사귀지 못했는데, 다들 너무 젊었기 때문이다.

‘중년판 트레바리 열어줘라.’ 엄마는 요청했다. 아니, 내가 해달라면 다 해줄 수 있는 사람인가…. 흘려들었더니 며칠 뒤 장문의 문자가 왔다. ‘내가 하고 싶은 것=대화 소통하기, 같이 걷기, 스트레칭 하기, 디저트 집 가보기, 휴대전화 앱 깔기, 컴퓨터 간단한 거 배우기, 사위와 데이트하기(?), 손녀와 놀기(?), 세대 간 소통 창구 프로젝트 만들어 주세요. 시간 남아돌고 외로운데 함께할 놀이가 없어.’

때마침 작업실을 계약했고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엄마 친구 찾기 프로젝트, 한번 해볼까? 독서모임보다는 평소 하고 싶었던 글쓰기 수업을 열어 보자.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하지만 엄마의 반대가 컸다. ‘네가 무슨 선생이고! 가르치기엔 커리어가 부족하다.’ 인정. 하지만 하고 싶은데 그냥 한번 해 보면 안 될까요?

일단 던졌다. 이런 걸 해 보고 싶은데 혹시 수요가 있을까요?

없었다.

용기란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행하는 것인데, 어리석음도 같은 거여서 삶이 어려운 거라던 말이 생각났다. 슬그머니 글을 내리려는데 낯선 ID로 쪽지가 왔다. ‘어머니께 여쭤봤는데 해보고 싶어 하세요!’ 심장이 ‘쿵’했다. 한 명이라도 와 준다면 그걸로 된 거야. 그렇게 포스터를 만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엄마 친구부터 친구 엄마 등 여성 7명이 모였다. 강의 하루 전날, 긴장 속에 리허설을 해 보는데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내 얘기를 경청해 주고 지지해 주고 재미있는 경험을 체험하게 해 주면 절로 그 곁에 오래 머무를 겁니다. 딸과 함께한 커피 집, 마라탕 집, 노래방 등은 나를 젊게 해주고 즐거운 추억을 갖게 해 줍니다. 이제 배우는 건 싫으니 많이 놀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가르치는 데 집중했던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장소, 분위기, 냄새, 그리고 이 공간에서 환대받는다는 마음.

어쩌면 이건 좋은 사업 아이템일지도 모른다. ‘액티브 시니어(은퇴 이후에도 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5060세대)’를 위한 담론도 활발하다.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또 액티브하지 않은 시니어를 위한 서비스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은퇴를 앞둔 엄마의 삶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득 찰 수 있기를. 나도 언젠가 60세가 될 테니까.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세대 간 소통#액티브 시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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