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유경제’에 글로벌 스탠더드는 없다[광화문에서/정세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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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진 산업1부 차장
정세진 산업1부 차장
“택시와의 갈등요? 택시는 스마트폰이 없는 외국인이나 눈앞의 손님을 태우면 되죠.”

2017년 12월 중국 선전공항에서 탄 차량 공유 업체 디디추싱의 운전사는 자신을 전직 택시 운전사로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선전에서도 차량 공유 사업에 대해 택시업계의 불만이 적지 않았지만 정부 정책에 대놓고 반발할 수 없어 기존 택시 운전사들이 빠르게 디디추싱의 운전사로 전직하는 분위기였다. 2012년 설립된 디디추싱이 현재 중국에서 하루 2500만 명이 이용하며 560억 달러(약 67조 원)의 가치로 평가받게 된 배경이다.

미국의 우버나 리프트가 상장하면서 최대 80조 원으로 평가받는 것을 지켜보는 국내 동종의 스타트업들은 답답할 것이다. 차량 공유 업체인 ‘타다’를 운영하는 이재웅 쏘카 대표가 최근 잇달아 정부의 혁신성장 의지를 비판하며 홍남기 경제부총리에 이어 최종구 금융위원장과도 논쟁을 한 것은 이런 차원일 것이다. 매번 요금을 올릴 때마다 서비스를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공염불에 그쳤던 택시업계와 달리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들이 우리 사회의 혁신을 주도할 세력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타다와 같이 승합차에 운전사를 동행시키는 사업은 편법이라는 택시 운전사들의 주장을 영 무시하기도 애매하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령에서 11인승 이상 승합차를 빌리면 예외적으로 운전사 알선을 허용한 입법의 취지는 행사나 여행 시에 렌터카 대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스타트업들이 규제 속에서 그나마 찾아낸 실마리가 택시 운전사들에겐 편법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해외라고 혁신기업이 공짜로 자리 잡은 건 아니다. 미국에서조차 뉴욕에서 8명의 택시 운전사가 우버의 성장으로 생활고를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미 진입장벽을 낮췄던 국가에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대만은 6월부터 우버 영업에 사실상 제동을 거는 등 논란은 진행형이다.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기 힘든 중국 사례나 택시 인프라가 극히 열악한 동남아를 예로 들며 ‘차량 공유 산업의 진입장벽을 허무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하기도 힘들다.

우리 사회가 소모적 논란에 갇혀 혁신적 기업이 성장하지도 못하고, 기존 산업 종사자들의 좌절만 깊어지고 있는 요즘, 한 가지 제안을 해볼까 한다. 이런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 차랑 공유 업계가 자신들이 누릴 혜택을 나누는 방식을 고민해 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지금은 정부가 세금으로 택시업계를 보상해 줄 것을 바라는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만일 수익의 일부를 택시 면허를 사들이는 데 지원하고, 택시 운전사들을 직원으로 우선 채용하겠다고 제안하면 어떨까.

혁신과 기존 산업이 부딪쳤을 때 갈등 조정은 정부의 몫이다. 하지만 혁신이 진행됐을 때 누구보다 이익을 보는 건 차량 공유 플랫폼의 소유주다. 오죽했으면 뉴욕타임스가 “우버 상장은 한 줌의 사람들을 백만장자 혹은 억만장자로 만들어줄 뿐”이라고 지적까지 했겠는가. 여기저기 눈치만 보는 정부가 꿈쩍을 하지 않으니 자생적 해결책도 한번 찾아보면 좋겠다.

정세진 산업1부 차장 mint4a@donga.com
#공유경제#혁신기업#택시 면허구입#스타트업#자생적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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