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지표 악화되자 정부를 원망하지만
경제라는 그라운드는 기업과 개인이 주인공
심판인 정부는 룰에 따른 절차 지키는 역할을
실제로는 총수 횡령-탈세해도 집행유예로 끝
실추된 정부 권위 탓에 노조도 규정 안 지켜
요즘은 별로 볼 수 없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암행어사가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특히 명절만 되면 춘향전의 여러 버전이 방영되었는데,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이몽룡의 어사출두였다. 고난받는 민초를 위해 홀연히 나타난 암행어사는 모든 악을 완전히 제거하고 민초의 눈물을 닦아준다.
비슷한 드라마로 일본에는 ‘미토코몬(水戶黃門)’이라는 사극이 있다. 역시 힘과 정의감을 겸비한 권세가가 홀연히 나타나 백성의 고초를 해결해 준다. 십수 년 전에 일본 교수들과 해외 출장을 같이 간 적이 있는데, 그중 한 교수가 일본에서 시민운동이 약한 이유로 이 드라마를 든 적이 있다. 일본인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누군가 힘을 가진 이가 해결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대 일본인에게 그 힘을 가진 존재는 일본 정부고,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정부만 바라보는 것이 일본의 문제라고 그는 개탄했다.
거기에 비해 한국인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고 저항감이 높다. 그러나 사회의 많은 부문에서 정부의 역할을 바란다는 점에서는 일본과 유사한 면이 있다. 암행어사 출두를 갈망하는 사극의 민초처럼 21세기 한국인 역시 위대한 지도자가 한국의 모든 문제를 척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어찌 보면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의 기저에는 기대한 것만큼 속 시원하게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암행어사에 대한 실망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경제지표가 악화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증폭되자 정부를 향한 원망과 질타가 대단하다. 일본은 아베노믹스로 경제가 살아났다는데, 한국 정부는 왜 뒷짐만 지고 있느냐는 말도 자주 들린다. 그러나 정부는 경제 환경을 정비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그라운드에서 뛰어야 하는 것은 기업과 개인이다. 아베노믹스가 일본 경제 회복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기업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호황도 없었을 것이다. 정부에 환경을 정비해 달라는 요구는 할 수 있지만 개인에게 직업을 주고 기업에 시장을 주는 일은 정부의 능력 밖에 있다.
사실 개인과 기업이 제대로 뛸 수 있는 그라운드를 만들어 주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선수들은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한 룰을 만들고 싶어 하고, 룰에 따른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제기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심판의 권위가 중요하고, 권위는 룰의 제정과 집행이 얼마나 공정한가에 달려 있다. 납득할 수 없는 편파 판정이 난무한 그라운드는 우수한 선수를 키울 수도, 성숙한 관중을 잡아 둘 수도 없다.
그동안 적지 않은 수의 대기업 총수가 횡령이나 탈세 등의 혐의로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대개의 경우 집행유예에 그쳤고, 실형을 받은 경우에는 거의 예외 없이 정치적 사면을 받아 형기를 채우지 않았다. 어느 선진국에서 이런 일이 또 있을까? 룰의 적용이 공정하지도 일관적이지도 않아, 심판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불법적으로 탄압한 역사가 있는 반면, 불법적인 노조의 폭력시위에 적절한 공권력으로 대응하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다. 심판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영(令)이 제대로 서지 않아서다.
최근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서 현대중공업을 분할해 한국조선해양이라는 중간지주회사를 세우기로 산업은행과 합의했다. 그러나 법인 분할을 추인하기 위한 임시 주주총회장을 민주노총과 현대중공업 노조가 점거하는 등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난항을 겪었다. 노조가 힘으로 주주총회를 저지하려는 것은 심판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경영진이든 노조든 룰을 위반한 일이 없는지 살피고, 룰에 따른 절차가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심판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떨어진 권위를 다시 세울 수 있다.
21세기 정부는 사극의 암행어사처럼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한 사람 한 사람 민초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아도 된다. 법과 질서를 공정하게 세우면 억울한 눈물을 흘릴 일이 없기 때문이다. 법과 질서가 공정한 사회였다면, 춘향이는 암행어사를 기다리는 대신 당당하게 변사또와 법정에서 다투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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