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베이징의 관변 연구기관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 중국 경제 무역 부서 전직 고위관료들이 대거 모여 미국의 전방위적 기술, 무역전쟁을 한목소리로 성토했다.
왕춘정(王春正) 전 공산당 중앙재경영도소조판공실 주임은 미국이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데 대해 “비(非)시장 수단으로 기업을 압박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미국의 바링((패,백)凌)주의는 민심을 얻지 못한다. 우리는 계속 반대해 왔다”고 지적했다. ‘바링’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괴롭힘이고, 바링주의는 국가가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하는 걸 뜻한다.
중국이 볼 때 바링주의는 미국이 정치 안보를 이유로 중국 기업을 괴롭히는 것이다. 하지만 떠오른 건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였다. 중국은 각종 보이콧 제재 조치로 롯데 등 한국 기업들에, 한한령으로 한국 대중문화 산업에, 단체관광 금지로 관광 산업에 타격을 입혔다. 이날 세미나를 진행한 웨이젠궈(魏建國) 전 상무부 부부장을 따로 만났다.
―미중 충돌 중에 한국이 중국 편에 서야 한다고 보나.
“그러기를 완전히 바란다. (중국과) 관계가 호전되면 한국은 또다시 비약할 것이다. 호전되지 않으면 미국 무역의 커다란 압박 아래 놓일 것이다.”
―중국 기업에 대한 억압을 바링주의로 보던데, 한국에선 중국의 사드 보복을 생각나게 한다는 지적이 많다.
“롯데는 중국에 커다란 해를 끼쳤다. (롯데 보이콧은) 국민 스스로 원한 것이다. 중국 당국은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미국처럼) 정치적 이유로 경제 수단을 사용해 타국 기업을 억압한 사례 아닌가.
“그렇지 않다. 우리(중앙 정부)는 어떤 제한 정책도 실시한 적 없다. 선양 등 일부 지방도시 관료들이 말한 적은 있다.”
―(중국에서 제한하는) 정책이 중앙 승인 없이 가능한가.
“지방정부 제멋대로 하는 게 매우 많다(이 대목에선 그도 웃었다). 당연히 (보이콧은) 롯데의 자본 철수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법률 조항으로 집행하는 미국의 바링주의와 다르다.”
―그 말은 (사드 보복을 겪은) 한국인 일반 정서와 다르다.
“나 역시 이해한다. 하지만 잘 설명해 주기를 바란다.”
그의 말은 롯데 등 한국 기업에 대한 보이콧이 있었지만 중앙정부가 정책으로 관여한 건 전혀 없으니 미국이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을 제재하는 것과 같은 ‘괴롭힘’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만난 중국인 학자는 “사드 보복 조치는 너무 심했다. 중국 정부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한국 기업 괴롭힘은 분명히 존재했다. ‘은밀한 바링주의’다. 미국과 장기전을 시작한 중국은 한국이 자기들 편에 서기를 원한다. 한한령이나 단체관광 금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국 민심이 그런 중국 편에 서기를 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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