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원의 ‘건축 오디세이’]건축계의 ‘봉테일’… 재클린의 마음을 사로잡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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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불멸의 거장 이오 밍 페이

그림 이중원 교수
그림 이중원 교수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최근 건축가 이오 밍 페이(貝聿銘)가 향년 10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고 파리 루브르박물관 피라미드, 워싱턴 국립미술관, JFK도서관 등으로 잘 알려진 건축가다. 페이는 중국 광저우에서 태어나 상하이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군에서 제대 후 하버드대 대학원을 나왔다. 그 후 1948∼1960년 뉴욕 부동산 재벌 윌리엄 제켄도프와 일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주택난을 타개하고자 했다. 1949년 법안 ‘타이틀 원’이 미국 의회에서 통과됐다. 도심의 슬럼지구를 헐고 새로운 고층 주거시설로 재개발하는 환경 개선 법안이었다. 두 사람에게는 새로운 기회였다.

페이는 시카고에 가서 근대 건축 거장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를 만났고, 그가 디자인한 최신 철골 유리 아파트들을 보며 감동했다. 하지만 미스 반데어로에의 아파트가 철골 구조와 유리 외피를 분리해 공사 평당 단가가 높은 것은 부담스러웠다. 그리하여 페이는 구조와 외피가 하나가 될 수 있는 방식의 콘크리트로 개발했다. 문제는 이 방식도 비쌌다. 평당 공사비가 650달러가 나왔다. 제켄도프는 “가격 경쟁력이 없다”고 말했고 페이도 공감했다. 제켄도프는 건설사 대신 고속도로와 다리를 짓는 콘크리트 회사를 페이에게 사줬다. 페이는 이 회사와 씨름해 평당 단가를 365달러로 낮췄다.

오늘날 봐도 페이의 고층 콘크리트 건축은 입이 벌어진다. 필자는 보스턴에서 페이의 건물을 보며 우리나라 콘크리트 아파트들과 비교해 감탄한 적이 있다. 그가 당시 개발한 콘크리트 고층 건축과 한국의 아파트는 한 가지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모서리 디테일이다. 고층 콘크리트 건물은 재료 때문에 무거워 보인다. 그 상황에서 모서리가 닫혀 있으면 안 그래도 무거워 보였던 건물이 이제는 밑으로 가라앉으려는 것같이 보인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페이는 고층 콘크리트 건물의 모서리를 섬세하게 열었다.

측면은 45도 접어서 안으로 집어넣었고, 전면은 갈라서 측면 위에 포갰다. 그 결과 모서리에서 빛이 나고 전면과 측면은 미끄러진다. 건물의 느낌이 가벼워진다. 페이는 창문 앞에 두꺼운 콘크리트 루버(채광이나 통풍을 위한 비늘창)를 두었다. 루버의 그리드 간격은 동일하게 가다가 모서리에서는 넓어지고 예리해진다. 예리하게 열린 모서리는 루버 간격의 길이 변화로 더 날렵해지고 팽팽해진다.

제켄도프에게서 독립한 후 페이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암살로 죽자, 케네디가(家)는 JFK도서관을 짓고자 했다. 미망인 재클린 여사는 건축가 여러 명을 만났다. 그중에는 쟁쟁한 노장 미스 반데어로에와 루이스 칸도 포함됐다. 당시 미스 반데어로에나 칸에 비해 페이는 풋내기였다. 페이는 재클린 여사가 자기 사무실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급히 리셉션 공간을 새로 페인트칠했다. 테이블 위에는 신선한 꽃다발을 뒀다. 재클린 여사가 “리셉션에 늘 신선한 꽃을 두세요?”라고 물었고 페이는 “당신을 위해 오늘만 두었습니다”라고 홍조를 띠며 솔직히 답했다. 스트레스로 억눌려 있던 재클린 여사는 페이의 인간적인 배려에 감동했다. 재클린 여사가 페이에게 “어떤 도서관을 염두에 두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직은 (당신과 대화한 바가 없어서)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재클린은 미스 반데어로에와 칸 대신 페이를 선정했다. 1965년의 일이다. 이는 특종감이었다. 페이는 하루아침에 ‘개발업자의 설계사’에서 ‘미국 최고 아키텍트’로 부상했다. 이 덕분에 페이는 워싱턴 국립미술관을 수주할 기회를 잡았다. 이 미술관을 보고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페이에게 루브르박물관을 맡겼다.

페이는 동양계 건축가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그의 성공에는 3가지 교훈이 있다. 첫째, 새로운 시대를 읽었다. 둘째, 빡빡한 예산으로도 남다른 디테일을 구현했다. 셋째, 사람과의 작은 만남 속에서 기적을 볼 줄 알았다. 작고한 페이는 섬세하고, 그의 건축은 그를 닮아 있다.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이오 밍 페이#루브르 피라미드#프리츠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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