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우 칼럼]대북 식량지원 꼭 해야 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6일 03시 00분


섣부른 대북식량 지원 결정은 北이 비핵화 압력 견디게 돕는 일
표본 적고, 왜곡 가능성 높은 북한 식량난 통계도 의심해 봐야
核물질 생산 중단과 美곡물지원 연계해
北이 먼저 식량난 自救 노력하게 해야

천영우 객원논설위원·(사)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천영우 객원논설위원·(사)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정부가 세계식량계획(WFP)과 유니세프의 북한 영양지원 사업 등에 남북협력기금 8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향후 대규모 추가 지원을 위한 신호탄으로 보인다. 북한의 식량 부족이 WFP나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서가 주장하는 만큼 심각한 것이 사실이고, 북한의 자력으로는 달리 해결할 방도가 없고, 필요한 주민에게 전달된다는 보장이 있다면 정치논리를 떠나 순수한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식량 문제 해결의 궁극적 책임은 북한 당국에 있으므로 북한이 먼저 해결 노력을 다하는 것이 순서다. 국제사회와 우리 정부의 몫은 북한 당국의 책임을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자체적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부분을 도와주는 데 있음을 망각하면 안 된다.

먼저 북한이 식량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다른 방법은 없는지부터 따져보자.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핵무기 원료물질 생산을 중단하는 조건으로 일정 기간 매년 곡물 100만 t을 요구하는 것이다. 핵 동결의 대가로 미국이 제재를 완전히 풀어줄 수는 없어도 식량을 지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5억 달러어치의 식량 지원은 1억 달러어치의 석유제품 지원보다 정치적으로 더 용이하다. 곡물 주산지 출신 상·하원 의원들이 표심을 의식해 쌍수를 들고 환영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미 생산한 핵무기와 핵물질 재고는 하나도 축내지 않고 김정은이 금년도 신년사에서 공언한 추가 생산 중단 약속만 지켜도 향후 수년간은 식량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 제재 해제와 체제 안전 보장 등 북한의 요구사항을 관철하는 데는 이미 확보한 핵미사일과 핵무기 원료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손쉬운 해법이 있음에도 북한이 마다한다면 이미 확보한 핵 무력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주민들을 굶기더라도 핵 무력 증강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의미다. 북한이 식량난을 해결하는 대신 핵 물질과 핵무기를 늘리는 선택을 고집한다면 그 결과에 대해 우리 정부가 북한을 대신하여 책임을 지겠다고 굳이 나설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식량 지원을 강행하는 것은 북한의 핵 무력 증강에 지장이 없도록 짐을 덜어주고 제재와 비핵화 압력을 버틸 체력을 보강해주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북한의 식량 상황에 대한 WFP와 FAO의 평가도 그 신뢰성을 의심해볼 여지가 있다. 북한당국이 제공한 통계와 12개 군 54가구만을 인터뷰한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것이라면 표본이 너무 작고 북한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 이들 국제기구는 식량난을 과장하는 데 북한 당국과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고 실제 과장해온 전력도 있다. 북한 식량난이 절박해 보일수록 기부금 모금에 유리하고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기가 용이해진다는 점에서 국제원조기구가 조직 이기주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북한이 국제원조기구에 제출한 식량생산 통계도 맹신할 것이 못 된다. 국제 제재에 장기간 버티는 데 북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최대한의 식량을 비축해두는 것이다. 수출입이 막히고 외화가 바닥나더라도 먹을 양식만 있으면 미국의 핵 포기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을 계속할 수 있다. 식량 부족을 가급적 부풀리는 것이 국제기구의 지원을 받는 데 유리하다는 계산이 작용할 수도 있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식량난을 과장하지 않더라도 2012년 채택한 포전담당책임제도가 통계의 왜곡을 조장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포전담당제는 사실상 북한의 농지를 사유화한 농업혁명이다. 소출의 일정 비율만 당국에 바치고 나머지는 농민들에게 자율처분권을 허용하면서 농업생산량은 대폭 늘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인센티브제도 아래에서는 생산량을 축소 신고할수록 농민이 더 많은 몫을 챙길 여지가 생긴다. 공적 배급 체제의 역할이 축소되고 시장이 식량 수급의 중심적 기능을 수행하는 상황에서는 시장의 가격 동향이 실제 식량 사정을 반영하는 가장 신뢰성 있는 지표다. 공식 통계상 작년도 곡물생산량이 전년에 비해 12%나 감소했는데도 시장가격이 안정되어 있다면 농민들이 시장에 직접 판매하는 농산물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의미가 아닌가. WFP와 FAO가 장마당의 곡물시세 조사를 하지 않은 이유가 석연치 않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사)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대북 식량지원#세계식량계획#유엔식량농업기구#장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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