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가슴이 갑갑할 때면, 사회 초년생 시절 처음으로 독립해 머물렀던 동네를 찾는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8개월, 살았다고 하기엔 짧지만 여행했다고 하기엔 충분히 긴 시간. 반짝이는 천이 흐르고 푸른 숲이 우거진, 아기자기한 카페가 즐비한 사랑스러운 동네. 그리고 그곳에 처음 온전히 내 힘으로 마련한 작은 원룸 하나. 퇴근 후 집에 들어설 때면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안전하고 포근한 오직 나만을 위한 세계.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 동네만 찾으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취향이 없거나 뚜렷하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선호가 충돌할 때면 늘 손쉽게 물러서는 쪽이었고 학창시절부터 내 방에는 그 흔한 연예인 사진 한 장 없었다. 그랬던 내가 내 집이 생기자 입맛대로 꾸미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서툴지만 조금씩 요리도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좀처럼 접할 기회가 없었던 미술 학원에 등록했고, 듣지 않던 음악을 듣고, 보지 않던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간 한 번도 누려보지 못 했던, 성적표도 합격증서도 없는 ‘취향 찾기’의 사치에 푹 빠진 꿈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다 문득 ‘백문백답(百問百答)’을 떠올렸다. 어릴 적 다이어리가 한참 유행하던 시절에는 친구들과 서로의 백문백답을 교환하곤 했다. 친구의 취미와 특기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과 음식이, 그땐 뭐가 그리도 궁금했을까.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작 나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그땐 그랬다. 친구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궁금한 게 참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다시 백문백답을 쓰기 시작했다.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일단 해 봐야 했기에,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답을 채워 나가는 과정은 흡사 하나의 놀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습관이 되어 지금도 나는 다이어리 한편에 백문백답을 가지고 있다. 사실 ‘백(百)’까지는 턱도 없고 그래 봤자 한 ‘이십문이십답’쯤 될 테니 말하자면 ‘스무고개’에 더 가깝다. ‘나’라는 정답을 찾기 위한 스무 가지의 질문. ‘어떤 작가를 좋아합니까?’ ‘어떤 노래를 좋아하죠?’ ‘좋아하는 여행지는?’ ‘기분이 울적할 땐 주로 무엇을 하나요?’ ‘당신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린 시절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 나를 대신해 내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더욱이 그 답변을 자신의 다이어리 한편에 소중히 진열해줄 이는 없다는 것이다.
궁금함은 대개 애정으로부터 기인하고 여유 속에서 자란다. 애정이 없으면 궁금하지 않고 여유가 없으면 궁금할 수 없다. 애정이 사라진 연인 간에 가장 먼저 소실되는 것은 서로를 향한 질문이고, 바쁜 일상에서 가장 먼저 버려지는 것 또한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아니던가. 그러니 오늘, 소중하지만 미처 궁금해 하지 못했던 대상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가족에게 연인과 친구들에게, ‘백문’까진 아니더라도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의 취향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당신을, 웃게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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