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김지영]다시 쓰는 백문백답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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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원스토어 eBook사업팀 매니저
김지영 원스토어 eBook사업팀 매니저
가끔 가슴이 갑갑할 때면, 사회 초년생 시절 처음으로 독립해 머물렀던 동네를 찾는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8개월, 살았다고 하기엔 짧지만 여행했다고 하기엔 충분히 긴 시간. 반짝이는 천이 흐르고 푸른 숲이 우거진, 아기자기한 카페가 즐비한 사랑스러운 동네. 그리고 그곳에 처음 온전히 내 힘으로 마련한 작은 원룸 하나. 퇴근 후 집에 들어설 때면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안전하고 포근한 오직 나만을 위한 세계.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 동네만 찾으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취향이 없거나 뚜렷하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선호가 충돌할 때면 늘 손쉽게 물러서는 쪽이었고 학창시절부터 내 방에는 그 흔한 연예인 사진 한 장 없었다. 그랬던 내가 내 집이 생기자 입맛대로 꾸미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서툴지만 조금씩 요리도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좀처럼 접할 기회가 없었던 미술 학원에 등록했고, 듣지 않던 음악을 듣고, 보지 않던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간 한 번도 누려보지 못 했던, 성적표도 합격증서도 없는 ‘취향 찾기’의 사치에 푹 빠진 꿈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다 문득 ‘백문백답(百問百答)’을 떠올렸다. 어릴 적 다이어리가 한참 유행하던 시절에는 친구들과 서로의 백문백답을 교환하곤 했다. 친구의 취미와 특기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과 음식이, 그땐 뭐가 그리도 궁금했을까.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작 나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그땐 그랬다. 친구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궁금한 게 참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다시 백문백답을 쓰기 시작했다.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일단 해 봐야 했기에,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답을 채워 나가는 과정은 흡사 하나의 놀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습관이 되어 지금도 나는 다이어리 한편에 백문백답을 가지고 있다. 사실 ‘백(百)’까지는 턱도 없고 그래 봤자 한 ‘이십문이십답’쯤 될 테니 말하자면 ‘스무고개’에 더 가깝다. ‘나’라는 정답을 찾기 위한 스무 가지의 질문. ‘어떤 작가를 좋아합니까?’ ‘어떤 노래를 좋아하죠?’ ‘좋아하는 여행지는?’ ‘기분이 울적할 땐 주로 무엇을 하나요?’ ‘당신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린 시절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 나를 대신해 내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더욱이 그 답변을 자신의 다이어리 한편에 소중히 진열해줄 이는 없다는 것이다.

궁금함은 대개 애정으로부터 기인하고 여유 속에서 자란다. 애정이 없으면 궁금하지 않고 여유가 없으면 궁금할 수 없다. 애정이 사라진 연인 간에 가장 먼저 소실되는 것은 서로를 향한 질문이고, 바쁜 일상에서 가장 먼저 버려지는 것 또한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아니던가. 그러니 오늘, 소중하지만 미처 궁금해 하지 못했던 대상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가족에게 연인과 친구들에게, ‘백문’까진 아니더라도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의 취향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당신을, 웃게 합니까.
 
김지영 원스토어 eBook사업팀 매니저
#사회 초년생#백문백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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