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았다고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개인적이고 매우 따뜻하고 매우 멋진 친서였다”며 “매우 긍정적인 뭔가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3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추후 어느 시점”이라고만 했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도 3차 회담에 대해 “전적으로 가능하다. 열쇠는 김정은이 쥐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의 친서를 계기로 2·28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100일 넘게 사실상 연락두절 상태인 북-미가 다시 대화의 시동을 걸 수 있을지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일단 그렇게 물꼬가 트인다 하더라도 3차 정상회담이 성사될지는 알 수 없다. 더욱이 하노이 결렬에서 봤듯 두 정상이 아무리 ‘좋은 관계’라도 그것으로 합의가 이뤄질 수는 없다. 비핵화 해법을 둘러싼 양측의 견해차는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미국의 일괄타결식 빅딜 요구에는 응답하지 않은 채 미국의 태도 변화만 촉구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주 내놓은 싱가포르 1주년 담화를 통해 “우리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미국은 셈법을 바꿔 하루빨리 우리 요구에 화답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1주년인 어제도 노동신문을 통해 “전쟁은 외교나 구걸이 아니라 강력한 물리적 힘으로만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협박조 언사가 김정은 친서에는 어떻게 윤색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래선 실무협상이 시작되더라도 시간을 벌기 위한 ‘대화를 위한 대화’만 계속될 뿐이다.
김정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장례에 조문단을 보내지 않았다. 그 대신 동생 김여정을 통해 판문점에서 조의문과 조화만 전달했다. 남북관계를 단절시키고 남측을 향해 ‘어느 편인지 확실히 하라’고 윽박질러 온 북한이다. 진지한 대화의 기회인데도 남측과의 접촉은 최소화하면서 미국엔 입에 발린 친서를 보내는 김정은의 태도에서 변화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노르웨이 오슬로대 연설에서 “평화란 힘에 의해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평화는 오직 이해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 어록을 인용하며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주문했다. 백번 지당한 얘기겠지만,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에서 그런 낭만적 평화론으로 북핵을 어떻게 풀 수 있을지 답답할 뿐이다. 북-미는 각자 셈법에 따라 또 다른 ‘외교 쇼’를 준비하는데, 우리 정부는 공치사나 하자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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